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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답변 | Re: 노인직 동지중추부사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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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_profile 允中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5-04-16 16:34 조회620회 댓글7건

본문

구족보를 찾아보았더니, 1766년 병술보에는 증직 기록이 없습니다.

1825년 을유보에 임진보 내용과 같은 증직 기록이 있습니다.

 

호군공 휘 秉中의 둘째아들 朴輳의 후손들 중에서 

15세 朴之文 : 증군자감정(정3품)

16세 朴昇   : 증좌승지(정3품)

17세 朴天宙(1689생~1767졸; 79세) 증호조참판(종2품) 

18세 朴師春(1723생~1799졸;77세) 노인직 동지중추부사(종2품)를 받았기 때문입니다.

 

경국대전에 노인직은 나이가 만80세가 되면 받는 것으로 정해져있고, 당상관은 왕명에 따라 받는다고 하며, 시종신의 부친 또는 지방장관의 부친은 70대에도 주었다고 합니다.   ※ 노인직 : 노인직(老人職)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특이한 점은 아버지 朴天宙는 79세였으나 노인직을 못받았고, 아들 朴師春은 진사 생원 명단에도 이름이 없고, 자식들 중에도 벼슬한 기록이 없는데 77세에 노인직을 받았으며,  종2품 당상관을 받았는데도 왕조실록 등에 기록이 없습니다.

또한 3대를 추증함에 있어서도 조부와 증조부가 같은 정3품 좌승지와 군자감정을 받았다는 것도 특이합니다.

경국대전에 따르면 1대에 1階씩 내려서 추증하도록 하였으므로, 조부가 정3품 증군자감정이면 증조부는 종3품 증군자감부정을 받아야 합니다. 

 

참고로 저의 조상님 중에 노인직을 받으신 분의 기록을 살펴보면,

14세 朴潢    가선대부 사헌부 대사헌 

15세 朴世相 통훈대부 광흥창수 증이조참판(3남 泰淳이 종2품 전라감사)

16세 朴泰辰 통덕랑 사직서참봉 증이조참판

17세 朴弼彧(1694생~1775졸; 82세) 진사 官효릉참봉 至자헌 동지중추부사 (품계는 정2품인데 동중추를 받음)

 

영조실록120권, 영조 49년 윤3월 21일 경진 2번째기사 1773년 청 건륭(乾隆) 38년

문·무·음관과 종신 중 80세로 금년에 가자한 사람을 불러 대내에  음식을 차리다

 임금이 덕유당(德游堂)에 나아가 문관(文官)·무관(武官)·음관(蔭官)과 종신(宗臣) 중 나이 80세로 금년에 가자(加資)한 사람을 불러 대내(大內)에서 음식을 차렸는데, 옛사람의 갑계(甲稧)의 뜻을 본뜬 것이다. 왕세손이 시신(侍臣)과 노인들을 거느리고 뜰에 내려가 천세를 부르고 노인들에게는 각각 면주(綿紬) 1필씩을 주었으며, 박필욱(朴弼彧)에게는 특별히 동중추(同中樞)를 제수하였다.


댓글목록

允中님의 댓글

profile_image no_profile 允中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반남박씨 족보 1825년 을유보는 좌의정을 지내신 서포공파 宗薰 도유사께서 평안도관찰사 시절에 서문을 쓰신 족보입니다. 적어도 조선시대에 만든 족보는 허투루 만들지는 않았을 것이니, 믿어도 될 것입니다.
100여년후인 일제 때 만든 갑자보, 한국전쟁 때 만든 무술보, 경신보, 임진보 등은 선계가 불분명한데도 족보에 편입되고, 남편의 官職과 부인의 品階가 맞지 않고, 贈職을 實職인 듯 기록하는 등 오염된 곳이 많이 발견됩니다.

시영님의 댓글

profile_image no_profile 시영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그래도 정말 신기해요 77세에 노인직을 받으려면.. 당상이어야 하는데 어떻게 받을걸까요.. 부당한 방법으로 한 건 아니겠지요 그래도 좀 안심입니다!

4kraphs8님의 댓글

profile_image no_profile 4kraphs8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추증/증직은 죽은 사람에게 내리는 것이고, 노인직은 살아 있는 사람에게 내리는 것입니다.
추증/증직은 자손 중에 고관, 공신 등 드러난 인물이 있어야 내려지는 것이고,
노인직은 나이가 일정한 수준에 이르러야 내려지는 것입니다.

조선 중기 선조(宣祖) 이후에 받은 노인직이나 추증/증직 등은
공명첩(空名帖)에 의해 국가로부터 돈(쌀 등)을 주고 산 것들도 많다고 합니다.
그래도 이 경우는 (엉터리이기는 하지만) 어쨌건 국가에서 인정을 받은 셈입니다.

족보(모든 성씨에 똑같이 적용됨)에 기록된 증직이나 노인직 중에는 엉터리가 아주 많다고 합니다.
옛날에는 오늘날처럼 정보 접근이 대단히 어려웠기 때문에
족보 편찬할 때 개인의 정보에 대한 확인이 사실상 거의 불가능하였습니다.

우리의 경우, 계해보의 기록은 (물론 완벽한 것은 아니지만) 믿을 만합니다.
그러나 그 이후 족보에 등재되는 후손들의 수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면서
족보 단자의 내용을 확인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해진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하여 병술보, 을유보에서는 어쩔 수 없이
"종파록(從派錄)"(해당 파의 기록을 따름)으로 제출된 단자의 기록을 그대로 받아들인 것 같습니다.
1924년에 간행된 갑자보 이후는 위의 允中님이 말씀하신 대로입니다.
(가장 최근의 임진보+세적에는 매우 많은 "오류"가 발견됩니다.)
물론 그렇다고 족보의 기록이 모두 거짓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족보는 종족(宗族)의 소중한 역사요 문화 유산입니다.
올바르게 기록해야 하며 거짓이나 오류가 있으면 당연히 바로 잡아야 하겠지요.

4kraphs8님의 댓글

profile_image no_profile 4kraphs8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오해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이 경우"는 "공명첩의 경우"를 가리키는 일반적인 말이었습니다.
즉 공명첩의 경우는 비록 돈을 주고 산 것이기는 하지만
어쨌건 국가로부터 받은 것이기 때문에 인정을 받은 셈이라는 뜻이었습니다.
시영님 선조님들의 경우를 가리키는 말이 아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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