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 | 좌의정 두계공 부친 군수朴參源은 삼원인가 참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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좌의정 두계공 부친 군수朴參源은 삼원인가 참원인가?
임진보에는 삼원으로 되어있고 왕조실록에도 삼원으로 번역되어있으나 박참원으로 검색을 해도 검색이 동일 하게나온다.
다움에는 두개공 부친이 삼원을 되어있고
네이버에는 참원으로 검색이 된다
한국학중앙연구원 지료인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박종훈
본관은 반남(潘 南 ). 자는 순가(舜 可 ), 호는 두계(荳 溪 ). 할아버지는 박사득(朴 師 得 )이고, 아버지는 군수 박참원(朴 參 源 )이며, 어머니는 한산이씨로 우의정 이사관(李 思 觀 )의 딸이다.
박종훈
[ 朴 宗 薰 ]
조선 후기의 문신이자 서예가이다. 자는 순가(舜 可), 호는 두계(荳 溪), 본관은 반남(潘 南)이다. 정재(定 齋) 박태유(朴 泰 維)의 현손이며, 부친은 군수 박참원(朴 參 源), 모친은 우의정 한산 이씨(韓 山 李 氏) 사관(思 觀)의 딸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박종훈 [朴宗薰] (한국 역대 서화가 사전, 2011. 11. 28.)
만가보 검색 박참원(朴參源)
본관
반남박씨(潘南朴氏)
족보기록
(子)參源
성명 박참원(朴參源) - 出
연결 계자 - 박참원 (朴參源)
원문위치 만가보 : 6 책 36 면 (좌측) 7 단 1 행
참고로
허참(許參)
대한민국의 MC, 코미디언, 가수. 특히 가족오락관 사회자로 한국 예능계의 레전드급 인물로 이름을 남겼다.
이참(李參)
독일 출신 귀화 한국인. 귀화 전의 독일명은 베른하르트 크반트(Bernhard Quandt) 였고 귀화 하면서 '이한우' 라는 이름을 얻었는데 다시 이참으로 바꿨다.
이명박과 인연이 생겨 그를 한국관광공사의 사장을 맡게 된다.
공기업인 한국관광공사에서 4년간의 임기를 끝냈고 퇴임 후 독도의 강치 복원에 나설것을 밝혔다
박효삼으로 해야하나 박효참으로 해야하나 여러 종원님의 의견을 듣고자 합니다.
20세 춘당공 朴孝參 할아버지 족보에는 박효삼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춘당공 종중에서는 박효참이라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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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세박효참(朴孝參)1716~1790 9-21壽一-師亮-鳳麟-孝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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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효참(朴孝參) 영조(英祖)20년(1744년), 식년시(式年試) 병과13(丙科13) 생년(生年) 1716년, 자(字) 행원(行源) 본관(本貫) 나주(羅州) 거주지(居住地) 미상(未詳) |
부(父) 박봉린(朴鳳麟) 조부(祖父) 박사량(朴師亮) 증조부(曾祖父) 박수일(朴壽一) 외조부(外祖父) 안후기(安後綺) 종조(從祖) 맹지(孟智) 전력(前歷) 유학(幼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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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행원(行源) 호 莎村 영조20(1744) 문과급제 도총부 부총관 등을역임 그의 莎村文集 4권이 미국 하버드대학에 소장되어 있다 영조37 6/15경상 도사(慶尙都事) 박효참(朴孝參)은 정조13 4/1 분 병조 참지 박효참(朴孝參)이 상소하기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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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목록
수락산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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泰維----弼基----師心----獻源----宗吉----昇壽,
師得----參源-- -宗復----民壽 (參源은 정재공후 師範 子가 師得으로 양자됨.
宗薰----最壽 (판관공에서 出)
師亨----和源-- -宗道----肈壽
叅,參; 같이 쓰는 자로 되어 있습니다 ,叅席한다, 參名이다,
내용은 사전을 찾아보아야 되겠지요
가계도는 위와 같습니다
한가람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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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 박참원(朴參源) 1749~1809 세당-태유-필기-사득-참원- 종복
《박종복(朴宗復)純祖) 07 (1807) 식년(式年進士)
【합격등위】 3등 0099
【본인성명】 박종복(朴宗復)
【본인 자】 희안(希顔)
【본인생년】 정해(丁亥) 1767
【본인본관】 반남(潘南) 박(朴)
관 : 재령군수
【본인거주】 경(京)
【본인구존】 구경하(具慶下)
【본인전력】 유학(幼學)
【부친성명】 박참원(朴參源)
【부친품계】 통훈대부(通訓大夫)
【부친관직】 정읍(井邑)/행현감(行縣監) 족보; 재령군수
【안항(제)】 박종훈(朴宗薰)
<승정원일기>
16. 순조 6년 11월 21일 갑자 1806년 / 朴參源에게 관직을 제수함
○ 吏曹口傳政事, 以朴參源爲井邑縣監。
21. 순조 8년 2월 21일 정해 1808년 / 吏批의 관원현황
, 朴參源爲載寧郡守
24. 순조 34년 8월 15일 정미 1834년 / 吏批의 관원현황
。 贈左贊成朴參源贈領議政例兼
允中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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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부분의 古典을 번역하는 분들은 '성균관한림원' 또는 '한국고전번역원'에서 공부한 사람들인데, 그들이 한문을 四書五經을 기본으로 原書로 공부하고 있습니다.
유학 고전을 공부하는 첫 단계에서 배우는 논어 里仁편에 등장하는 曾子의 이름이 曾參인데, 논어 원문에 '子曰參乎吾道一以貫之(參所金反)' 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參은 所의 ㅅ에 金의 음을 붙여 발음한다는 뜻)
따라서 대부분의 古文을 번역하는 분들은 이름에 쓰이는 參을 '삼'으로 읽는 것입니다.
옛날 유학을 공부한 선조들도 같은 책으로 공부했으니, 이름에 쓰인 參을 '삼'으로 읽지 않았을까요?
한국학중앙연구원의 '문과방목'에는 박삼원, 박효삼 같이 '삼'으로 표기하였습니다.
참고로 일본에서는 參을 さん으로 읽습니다.
允中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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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성일 |
큰 宗緖 형님 말에 따르면,
필모(弼謨) - 사범(師範) - ① 휴원(休源) ② 빈원(彬源) ③ 삼원(參源) : 셋째 아들이므로 '삼원' 일 것이고,
필기(弼基) - 사득(師得) - 삼원(參源) ; 양자를 갔던 것 입니다.
4kraphs8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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曾參의 "參" 독음에 대하여
중국에서도 논란이 있는 것 같습니다.
北京大學의 孫玉文 교수의 연구 결과를 소개합니다.
원래 曾參의 參은 "驂"(곁마 참)을 따른 것이라고 합니다.
그리하여 唐ㆍ宋 때에는 <倉含切>(우리나라 식으로 하면 "참")으로 읽었다고 합니다.
그 후 시간이 지나면서 參은 <所今切>(우리나라 식으로 하면 "슴")으로 읽게 되었답니다.
그 뒤 다시 변하여 <shēn>이 되었다고 하네요.
그러니까 우리나라 독음으로는 "삼"이 된 것 같습니다.
순전히 음운론적으로만 판단해 본다면,
"참"보다는 "삼"이 훨씬 발음하기도 쉽고 듣기도 편합니다.
"ㅊ"은 거센소리로 귀에 좀 거슬리는 듯하지요.
반면에 "ㅅ"은 예사소리로 혀 끝을 윗 잇몸에 닿게 하여 내는 소리라 편하게 들립니다.
<사르르 녹는다>에서도 느낄 수 있듯이
"ㅅ"과 "ㄹ"을 함께 쓰면 아주 편안합니다.
두 개 이상의 독음을 가진 한자가 사용된 이름은 언제나 우리에게 고민거리(?)이지요. ㅎㅎㅎㅎ . . . .
允中님의 연구에 찬사를 보냅니다.
아 참, 參源 할아버지의 직계 후손들께서는 參을 어떻게 독음하시는지 궁금합니다.
그분들 생각이 가장 중요한 것이 아닐까 싶습니다.
고유명사는 주인(!?)의 견해를 따르는 것이 원칙이라고 봅니다.
允中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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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가지 의문이 있습니다.
현장공 麗파는 1924년 갑자보부터 족보에 등재되었는데, 이후로 朴孝參의 아버지는 봉징(鳳徵)이라고 임진보까지 기록되어있습니다.
그런데 한가람님의 본문과 한국학중앙연구원의 문과방목에는 봉린(鳳麟)이라고 합니다.
반남박씨 족보가 틀렸을까요?
문과방목이 틀렸을까요?
4kraphs8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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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 판단으로는 아마 문과방목(종합방목)의 기록이 잘못이 아닐까 추측합니다.
(1) 문과방목 중에는 朴孝參의 父를 <鳳麟>으로 기록한 것도 있고,
<鳳輝>로 기록한 것도 있어 신뢰도가 떨어집니다.
이미 밝힌 바와 같이, 종합방목은 인적 정보를 후세에 와서
정확한 고증 없이 추가한 경우가 상당수 있는 것 같습니다.
(2) 咸陽派의 派錄은 계해보(1683년) 別譜에 처음 등장하며,
朴孝參은 그 다음의 병술보(1766년) 附譜에 처음 등재됩니다.
병술보 수단 시 함양파의 수단을 총괄한 분이 바로 朴孝參인데
병술 부보를 보면 <鳳徴>(徴은 徵의 속자)으로 나와 있습니다.
朴孝參이 자신의 부친 諱를 잘못 썼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그리고 을유보(1825년) 부보에서도 <鳳徴> 그대로 입니다.
위의 사항을 고려할 때 <鳳徴=徵>이 맞다고 봅니다.
따라서 <鳳麟>ㆍ<鳳輝>는 후세인의 오류로 판단됩니다.
允中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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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군요.
승혁 아저씨의 의견에 믿음이 갑니다.
朴孝參의 父는 朴鳳徵이라는 결론을 내립니다.
한국학중앙연구원의 역대인물정보 내용을 수정하도록 요청하겠습니다.
4kraphs8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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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고 많습니다.
모처럼 생산적인 토론이 된 것 같아 참 좋습니다.
참고로, 朴孝參과 관련하여
"莎村文集 4권이 미국 하버드 대학에 소장되어 있다."
는 내용을 확인해 보려 하니 잘 안되는군요.
세보에는 "유고四권(遺稿四卷) 장우가(藏于家)"라고 되어 있는데
아마 같은 문집으로 보입니다만 확인을 할 수가 없습니다.
만약 같은 것이라면 굳이 <하바드>를 언급할 필요는 없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한가람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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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과방목의 기록은 1744년 과거시험 試場에서 본인이 직접 작성한 기록이고
갑자보 기록은 1924년 180년후 후손이 작성한 기록이니
갑자보에 오류가 있다고 볼수 있지요
감사 합니다
4kraphs8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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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의 7번째 댓글을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박창서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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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남박씨족보 카페 박태서 게시판으로 펌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