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측컨대 과거의 틀에서 크게 벗어날 것 같지 않아 보입니다. KBS 홈페이지에 나와 있는 드라마 <대왕세종>의 등장 인물 소개를 보면 이미 모든 결론이 내려져 있습니다. 일각에서 주장하는 그대로 극의 내용(일부)이 전개되어야 대한민국 사람들의 흥미를 끌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지요. 시청자들은 실제에서는 잘 일어나지 않는 극적이고 비상식적인 것을 좋아하니까 말입니다. 그들이 주장하는 대로, <일화에 의하면 사약을 가지고 간 금부도사가 자손들에게 남기실 말이 없냐고 [안효공 심온에게] 묻자 그 자리에서 받아쓰게 한 것이 "오자손세세홀여박씨상혼야(吾子孫世世忽與朴氏相婚也)"였다. [忽이 아니고 勿로 되어 있는 자료도 있음]. 이 말은 "내 자손들은 대대로 혹시라도 박씨와는 서로 혼인하지 말라"는 뜻이다.>(파란 색 부분은 引用한 것임) 라고 한다면 구경하는 사람들의 입장에서야 참으로 흥미로운 일이 아닐 수 없겠지요.
설령 그 "일화"가 사실이라 하더라도 이미 600년 전의 일이거늘, 오히려 그 일은 더욱 확대되어 안효공의 후손들 뿐만 아니라 청송심씨 전체 후손들이 모든 반남박씨 후손들을 적대시하는, 어찌보면 안타깝기도 하고, 어색하기도 하고, 때로는 (젊은 세대들의 입장에서 본다면) 좀 우스꽝스러워 보일 수도 있는 상황이 600년 후에도 계속되고 있다니 뭐라고 할 말이 없습니다. (제가 듣기로는 묘지 문제로 씨족들 간에 400년 동안 (때로는 피를 흘리기도 하면서) 다툼을 벌여 오다가 최근에 해결을 보았다고 하는 이야기도 있더군요. 참 놀라운 일입니다. 수백여년 전 조상들의 일이 오늘날 그 후손들에게 까지 심각한 영향을 미치고 있다니 말입니다.)
그런 식으로 세상을 본다면 대한민국의 모든 씨족들은 다 원수지간이 되고 말 것입니다. 멀리 갈 것 없이 최영과 이성계, 정몽주와 이방원부터 시작해서 그토록 무수히 많았던 정권 투쟁, 권력 투쟁, 사화, 옥사, 당쟁의 소용돌이 속에서 무수히 스러져간 그 많은 사람들의 후손들이 얽히고 섥혀 그야말로 서로간에 불공대천지수가 되어야 할 판이니 참으로 슬픈 일입니다.
어쨌던 태종이 죽은 후 안효공의 후손들은 세종과 그의 아들들(문종, 세조), 그리고 그의 후손들의 후광으로 승승장구하여 이 땅의 명문으로 남았으니 어찌 보면 승자가 되었다고 말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이제는 그 "원한"을 버릴 때도 되었건만!
역사의 기록이 기록하는 사람의 필단(筆端)에 달려 있었던 경우가 많았으니 그 사건의 진실을 정말 있는 그대로 밝히는 일이 그리 간단치만은 않을 터인데 한 두가지 일만 가지고(그것도 실체를 정확히 모르는 상태에서) 한 인간에 대한 평가를 단정적으로 내린다는 것은 언제나 위험한 일임을 우리는 다 알고 있습니다. 더구나 그 평가가 정치적인 업적이 아니라 사사로운 개인의 인격에 대한 것이라면 더욱더 우려스러운 일이지요.
과거의 사실을 실체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야 역사가들의 몫이겠지만 600년의 시간이 흐른 지금까지 조상들의 "원한"에 연루되어야 하는 후손들의 심정은 착잡하기 그지 없습니다. 이제 우리 모두 과거의 망령에서 벗어나야 할 때가 된 것이 아닐런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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