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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일반 | 살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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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_profile 4kraphs8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4-01-09 11:57 조회1,853회 댓글11건

본문

<○○세(조/손)[○○世(祖/孫)]의 사용>


반남박씨세보』 세적편(2012년) 96~7쪽에 <始祖墓域紀事碑(시조묘역기사비)>의 비문이 올라 있습니다. 이 비문에 나오는 어구 중에 이 글의 주제와 관련하여 다음과 같은 부분을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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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반남박씨의 시조이신 호장공(戶長公, 휘 응주(應珠))의 묘역이다. . . . . . 우리 시조 호장공 묘소는 . . . . . 二세조(世祖, 휘 의(宜))와 四세조(世祖, 휘 수(秀)) . . . . . 六세(世) 평도공(平度公, 휘 은(訔)) . . . . . 十三세(世) 남곽공(南郭公, 휘 동열(東說)) . . . . . 十七세(世) 대사헌(大司憲, 휘 필명(弼明)) . . . . . 독려공(獨旅公, 휘 도원(道源)) . . . . . 二十六세손(世孫) 찬○(贊○ . . . . . 세웠다. . . . . . 二十五세손(世孫) 대종중도유사 ○서(○緖) 근지(謹識) . . . . . 二十四세손(世孫, . . . . . 승○(勝○) 음기(陰記) 근서(謹書)”

출처: <http://www.yesjokbo.org/ebook/bnpark/book/sejuk/EBook.htm> (96~97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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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비문에서 우리는 몇 군데 매우 흥미로운 표현들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즉, 급제공(及第公: 휘 宜)과 밀직공(密直公: 휘 秀)은 각각 “二세조(世祖)”ㆍ“四세조(世祖)”로 “조(祖)”를 붙여 표기하고, 평도공(휘 訔)ㆍ남곽공(휘 東說)ㆍ대헌공(大憲公: 휘 弼明)은 각각 “六세(世)”ㆍ“十三세(世)”ㆍ“十七세(世)”로 조(祖)를 붙이지 않았으며, “승○(勝○)”ㆍ“○서(○緖)”ㆍ“찬○(贊○)”에는 각각 “二十四세손(世孫)”ㆍ“二十五세손(世孫)”ㆍ“二十六세손(世孫)”으로 “손(孫)”을 붙여 표기하였습니다.


즉시 의문이 일어납니다. “세(조/손)” 앞에 붙어 있는 숫자는 과연 무엇을 나타내는 것일까? 나아가서, “○○세(世)” 뒤에 조(祖)나 손(孫)을 붙이는 기준은 또 무엇일까?


반남박씨세보를 보면, 시조(始祖: 一世) 호장공을 정점으로 하여 급제공(휘 宜)은 二世, 밀직공(휘 秀)은 四世, 평도공은 六世, 남곽공은 十三世, 대헌공은 十七世, 勝○은 二十四世, ○緖는 二十五世, 贊○은 二十六世로 나옵니다. 그러므로 위의 비문에 나오는 “세(조/손)” 앞 숫자는 제1세(시조)이신 호장공 자손들의 세대 순서(順序)를 나타내는 것이 분명해 보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표기 방식이 과연 옳을까요?


예를 들어, 9世ㆍ9世祖ㆍ9世孫은 각각 어떤 의미로 쓰는 것일까요? 祖나 孫이 붙지 않은 ‘9世’는 시조(1세)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자손들의 절대적인 세대 순서를 나타냅니다. 우리 반남박씨의 경우, 상주공(휘 林宗)ㆍ숙천공(휘 林楨)ㆍ승지공(휘 䃞) . . . . . 이 바로 9世에 해당하는 분들이십니다. 그렇다면, 9世祖ㆍ9世孫과 같이 祖나 孫이 붙은 경우는 어떤 뜻일까요? 여기서 한 가지 매우 중요한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습니다. ‘祖’나 ‘孫’이 붙으면 반드시 기준 인물이 전제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조(祖)ㆍ증조(曾祖)ㆍ고조(高祖), 또는 손(孫)ㆍ증손(曾孫)ㆍ현손(玄孫)이라고 말할 때는 반드시 ‘누구’라는 기준 인물이 전제되어야 비로소 의미가 완성되는 것과 마찬가지로, 5세조ㆍ6세조ㆍ7세조 또는 5세손ㆍ6세손ㆍ7세손의 경우에도 반드시 ‘누구’라는 기준 인물이 전제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세조’와 ‘○○세손’은 각각 두 기준 인물들의 관계를 전제로 하는 표현입니다. 예컨대, 반남박씨 9世이신 상주공(휘 林宗)께서는 현(現) 대종손 ○우(雨)님(반남박씨 27世)의 18세조(世祖)이시고, ○雨님은 상주공의 18세손(世孫)이 됩니다. 참고로, 상주공께서는 시조 호장공의 8세손이시고, 대종손 ○雨님은 호장공의 26세손이 됩니다.


여기서 한 가지 유의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바로 세수(世數) 산정(算定) 방식입니다. 너무도 당연한 이야기이지만, 우리는 어느 누구도 자신이 자신의 아버지[父]나 아들[子]이 될 수 없습니다. 마찬가지로 자신이 자신의 祖나 孫이 될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예컨대) '<A>는 <B>의 5세조이다'라고 한다면, <A(5세조)←고조(4)←증조(3)←조(2)←부(1)←B(0)>가 됩니다. 반대로, '<B>는 <A>의 5세손이다'라고 한다면, <A(0)→자(1)→손(2)→증손(3)→현손(4)←B(5세손)>가 됩니다. 아직도 혼란스러우신 분들은 <고조=4세조>ㆍ<현손=4세손>이라는 것을 기억해 두시면 도움이 될 것입니다.


다시 <시조묘역기사비>로 돌아가 봅시다. 여기서 공통 기준 인물은 당연히 주인공이신 호장공(1세)이십니다. 그러므로 호장공(1세)을 기점으로 하면, 급제공(휘 宜)은 아드님[子], 밀직공(휘 秀)은 증손, 평도공(휘 訔)은 5세손, 남곽공(휘 東說)은 12세손, 대헌공(휘 弼明)은 16세손이 되십니다. 그리고, 비문을 쓰신 ○緖님은 24세손, 음기를 쓰신 勝○님은 23세손, 그리고 경비(經費)를 담당하신 贊○님은 25세손이 되십니다.


비문에서 또 한 가지 이해하기 어려운 것은, 급제공과 밀직공(세적편 인쇄본)에는 ‘’를 붙이고 평도공ㆍ남곽공ㆍ대헌공에는 붙이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무슨 근거로 그렇게 했을까요? 왜 급제공(과 밀직공)은 ‘’를 붙여 표기하면서 평도공은 그냥 ‘六世’로만 표기했을까요? 아무리 생각해도 그 까닭을 찾기가 어렵습니다. (참고: 실제 비석 자체의 비문에는 "二世祖(휘 宜)와四世(휘 秀)兩位"라고 하여 밀직공의 경우에는 祖가 붙어 있지 않음. 세적편 인쇄본(원본?)의 실수(?)인지 혹은 비문을 새긴 각수(刻手)의 실수(?)인지는 분명하지 않음.)


이제 이 글을 마무리 짓겠습니다. ‘○○世’는 세대 순서를 나타내는데, 여기에 ‘祖’가 붙어 ‘○○世祖’가 되면 두 기준 인물들 사이의 세수(世數)를 아래 기준 세대에서 출발하여 산정(算定)하고, ‘孫’이 붙어 ‘○○世孫’이 되면 위 기준 세대에서 출발하여 세수를 산정한 것입니다. 이때 출발점이 되는 기준 세대 인물은 세수 산정에서 제외됩니다. 즉 자신(본인)이 자신(본인)의 祖나 孫이 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요약하면, ‘○○世’는 세대의 절대적(불변적) 순서를 표시하지만, ‘○○世祖’과 ‘○○世孫’은 반드시 기준 인물이 있어야 의미가 완성되는 표현임을 기억해 둡시다. 끝으로, 우리 세보 총편의 1세(시조) 호장공, 2세 급제공, 3세 참의공, 4세 밀직공, 5세 문정공(휘 尙衷), 6세 평도공 할아버님들의 방주(傍註) 에 나오는 관련 표현들을 잘 살펴보시면 도움이 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승혁 頓首

댓글목록

4kraphs8님의 댓글

profile_image no_profile 4kraphs8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박경우대통령>님, 반갑습니다.
글을 올려 놓고 혹시나 쓸데없는 일을 한 것이 아닐까 . . . . 걱정했는데
도움이 되었다니 위로를 받습니다.
고맙습니다.

允中님의 댓글

profile_image no_profile 允中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 세(대)조/손의 문제는 2024년 대종중 달력 1월에 나와있는 현석공께서 숭효록에 쓰신 '평도공의 신도비문'을 참고하면 될 것입니다. 현석공 世采(15세)에게 평도공 訔(6세)는 9대(세)조이며, '평도공의 신도비문'에 "惟我九世祖 左議政 錦川府院君 平度公"이라고 나오므로, 누구나 알고 있듯이 나를 기준으로 조상님은 몇대조 (후손은 몇대손)이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2. 1984년에 시조 묘역 기사비를 세우신 분들로 말하면 대종중 13대 집행부로서, 1709년 숙종 때에 대헌공 弼明이 세운 표석과 1762년 영조 때에 세운 상석과 망주석을 '문화재 가치가 충분하였음에도 불구하고, 멀쩡한 석물을 땅속에 함부로 파묻어 훼손' 하였던 사람들입니다. 
게다가 1941년에 대종중에서 새로 작성한 '대종중 봉사위 축문式' 에도 쓰여있고, 합천 문강공(朴紹)의 묘표 뒷면에도 '정경부인 홍씨'라고 쓰여있음에도 불구하고, 매년 시제 축문에 '증정경부인 홍씨'라고 쓰고 제사 지내던 분들 입니다.

하물며 그 사람들이 세운 '시조묘역 기사비'의 비문 내용인들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4kraphs8님의 댓글

profile_image no_profile 4kraphs8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 "누구나 알고 있"는지 어떤지는 잘 모르겠으나
아직도 대종중 게시판에 올라오는 글이나 자료를 보면
<세(조/손)> 사용에 실수(?)를 하시는 분들이 종종 보입니다.

2. 시조 묘역 기사비의 비문 내용이 무슨 의미가 있느냐 없느냐 거론한 것은 아니고,
비문 속의 <세(조/손)>의 사용에 대해 언급한 것일 뿐입니다.

문제는 이 비문이 세적편에 실려 있을 뿐만 아니라
그러한 비문이 새겨진 비석이 현재 시조 묘역에 세워져 있다는 사실이겠지요.

允中님의 댓글

profile_image no_profile 允中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주지하시는 바와 같이 현재의 세적편은 1980년 경신보 발간시 12대 집행부(도유사 尋緖)가 최초로 발간하였고, 2012년 17대 집행부(도유사 贊旭)가 1980년의 세적편을 복사한 것일 뿐입니다.

'시조묘역 기사비' 외에도 '정경부인 홍씨 묘갈명' 등 고쳐야 할 부분이 많습니다.
세적편은 물론 임진보 내용 오류에 이르기까지 "특별위원회"를 설립하여 대종중 발행 서적의 전반적인 수정 작업을 통해 '반남박씨 대종중 역사 바로 세우기'에 착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4kraphs8님의 댓글

profile_image no_profile 4kraphs8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1. 현 세적편이 구(舊) 세적편을 복사한 것이든 아니든 그것이 문제의 초점은 아닌 것 같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런 세적편이 반남박씨 대종중의 공인 문서로 홈페이지에 올라 있다는 것이지요. 특히 <시조묘역기사비>의 경우, 반남박씨의 상징인 시조 할아버님의 묘역에 그대로 서 있다는 사실을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을 듯합니다.

2. <세적편은 물론 임진보 내용 오류에 이르기까지 "특별위원회"를 설립하여 대종중 발행 서적의 전반적인 수정 작업을 통해 '반남박씨 대종중 역사 바로 세우기'에 착수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는 允中님의 말씀에 전적으로 공감하며,
그러한 생각을 가진 분이 계신다는 사실에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지지하는 박수와 함께 경의를 표합니다.

4kraphs8님의 댓글

profile_image no_profile 4kraphs8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오류 수정:
<A(0) . . . . . 현손(4)←B(5세손)>에서
마지막 화살표의 방향이 <→>로 되어야 합니다.
의도적인 실수가 아니라 단순 실수이오니 오해 없으시기 바랍니다.
불편을 끼쳐 송구합니다.
본문 필자 근백

박창서님의 댓글

profile_image no_profile 박창서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종사 연구 특별위원회 설치>
<允中>이라는 분이 누구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대종중 게시판에 가끔씩 글이 올라오는 것을 볼 때 우리 종중 역사와 관련된 연구를 많이 하시는 분 같습니다.
<멋진 말씀>이라고 하시니 정말로 그렇습니다.
대다수의 종인들은 그냥 지나치거나 무관심인데 진실을 알고 실천하고자하는 열성 또한 칭찬을 받을만하다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열성적인 생각을 가진 종인이 등장했을 때가 종사를 연구하고 바로잡을 좋은 기회라고 생각이 됩니다. 
대종중 차원의 종사연구<특별위원회>설치를 적극 찬성합니다.
2024.1.14
반남박씨 족보
카페지기 박창서

대종중관리자님의 댓글

profile_image no_profile 대종중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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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칭은 다르지만 위에서 말씀하신 기능의 위원회를 종사전례자문위원회의 자문위원을 중심으로 <역사연구 전문 소위원회>를 구성해서 현재 운영중입니다.

박창서님의 댓글

profile_image no_profile 박창서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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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군요.
대종중일에는 오래전부터 참여를 하지 않다보니 그런 상황을 잘 모르고 있었나봅니다. 
개선실적이 많이 발표되기를 기대합니다.
그리고 允中 이란분이 상임유사 宗緖씨라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종서님의 연구노력에 경의를 표합니다.

chanseo님의 댓글

profile_image no_profile chanseo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그렇군요.
그런데 <역사연구 전문 소위원회>가 대종중 조직기구표에는 안 보이네요.
공식 기구가 아닌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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