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백리 박규수 이야기
페이지 정보
박 찬문홈페이지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16-03-29 11:24 조회1,794회 댓글0건본문

박규수002.jpg

신미양요 골로라도호.jpg
청백리 박규수 이야기 - 한경칼럼-
박규수가 평안감사로 있을 때이다, 그의 부인은 녹봉을 아껴 살뜰하게 모은 돈으로 삼백석쯤 추수할 수 있는 땅을 사게 되었다. 그런데 땅 임자는 뱃심이 두둑한 영악한 놈이었다, 청렴하기만한 박규수의 속사정을 꿰뚫고 있는지라 그땅을 갑(甲)에게 팔았음에도 불구하고 다시 박규수의 부인에게 팔았다 결국 한 땅을 두사람에게 팔아먹은 셈이다.
그리하여 먼저 산 사람은 박규수에게 와서
“대감댁에서 삼백 석 추수를 하는 땅을 사신 일이 있으시죠?“
박규수는 이 말을 듣고 어리둥절 대답을 못하고 있다가
“우리 집에서 땅을 샀는지 무엇을 샀는지 모르겠네만... 하여간 그것을 왜 묻는 거요?“
“땅임자가 음흉한 놈인 것 같습니다. 소인에게 팔아 먹고 또 대감댁에 팔아 먹었나이다. 해서 대감을 찾아뵈러 온 것입니다.”
박규수는 이말을 듣고 청지기를 불렀다.
“너 지금 당장 안으로 들어가 땅 산 일이 있는지 없는지 조사하되 땅 산 일이 정말 있으면 그 문권을 가지고 나오너라”
청지기는 땅 문서를 가지고 나왔다. 박규수는 땅문서를 먼저 샀다는 사람에게 보였다. 그러한 박규수는 땅문서를 도로 자기가 가지고서
“그러면 내가 이 땅문서를 태워버리면 안 산 것이 되지 않겠소?”
하고 땅문서를 청지기에게 내주고 눈 앞에서 태워 버리게 했다,
선매자가 돌아가자 부인이
“땅문서는 어찌 하셨어요?"
하고 박규수에게 물었다.
“무슨 돈으로 땅을 사가지고 나를 귀찮게 구는 게요 불에 태워버리고 말았소”
“아니, 땅 산 것이 잘못 됐으면 문서라도 있어야 돈을 찾지 않습니까?"
"말인즉 옳은 말이오, 허나 상신이 되기가 무섭게 땅을 샀다면 그돈이 어디서 난 것이라고 세상 사람들은 말할 것이요, 또한 내가 상신의 지위에 있으면서 땅을 가지고 어찌 백성과 쟁송을 한단 말인가, 이 모든 것을 깊이 널리 생각하고 돈 찾을 생각은 염두에도 두지 마시오“
박규수가 이렇게 말하자 부인도 남편의 명예를 위하여 돈 찾을 생각을 포기하고 여전히 조반석죽으로 여생을 보냈다.
※ 박규수 ※
우리나라 개화 사상의 선구자
<열하일기>로 유명한 실학자 박자원의 손자로 조선 시대의 벼슬아치 중에서는 맨 처음으로 개화사상에 눈을 떴다. 두 차례에 걸쳐 청나라 북경과 열하에 다녀온 뒤 중국이 서양의 위협 아래 있는 시대 상황을 자각하게 되었는데 열하부사로 중국에 가서 서양 세력에 밀리는 청나라의 형편을 보면서 이 생각이 굳었다. 우리나라에 들어온 <해국도지>와 <영환지략>같은 서양의 정치 경제 역사 지리 풍속 등을 다룬 책을 통해 개화 사상에 계몽되었다. 이를 바탕으로 조선조 후기의 실학사상을 근대적 개화 사상 곧 자강사상(自彊思想)으로 발전시켰다. 그가 평양감사로 있을 때 유명한 제너럴.셔먼호(號) 사건이 일어났다. 미국인들이 제멋대로 대동강에 들어와 통상을 요구하다 말을 듣자 않자 함부로 총을 쏘는가 하면 사람을 납치하는들 소행이 해적떼와 다름없었다. 19세기에 서양 제국주의 세력이 늘 하던 버릇이었다. 그러자 성난 백성들은 썰물에 모래톱에 얹혀 꼼짝 못하는 셔먼호를 불태우고 선장 이하 선원을 모두 죽였다. 박규수의 명령에 따라 이루어진 응징이었다.
한편 그보다 앞서 일어난 천주교 박해 때는 평양에서는 한 사람의 피해자도 없었다고 한다. 평양감사 박규수가 정치의 잘못으로 천주교도가 생겼으므로 천주교를 박해해서는 안 된다고 반대한 까닭이었다. 박규수에게서 큰 영향을 받은 박영효는 감옥균 홍영식 서광범 등의 개화 사상이 모두 박규수의 사랑방에서 나왔다고 회고 했다. 그는 중국에서 들여온 지구의(地球儀) 를 돌려 보이면서 세계의 중심은 어느 나라나 보기 나름이라고 하였다. 중국이 세계 중심이라는 중화사상의 옳지 않음을 증명한 것이다. 김윤식, 유길준, 어윤중같은개화사상가 역시 박규수의 지도를 받았다고 한다.
헌종 14년에 문과에 급제하여 공조판서 대제학 우의정 등 높은 벼슬자리를 지내다 물러나 세상을 뜰 때싸지 개화론자로서 젊을이들에게 많은 영향을 끼쳤다. 박규수의 개국론은 유대치 오경석 등에 의해 더욱 발전되았으며 실학 개화자 독립사상으로 그 맥이 이어졌다. 호는 환재 선조의 사위 금양위 미의 7세손 연암 지원의 손자, 군수 희양(羲陽)의조부.
저서 <헌재집>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