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천위 사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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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라에 큰 공훈이 있거나 도덕성과 학문이 높으신 분에 대해 신주를 땅에 묻지 않고 사당(祠 堂)에 영구히 두면서 제사를 지내는 것이 허락된 신위(神 位)를 말한다.
불천지위(不 遷 之 位) 또는 부조위(不 祧 位) 라고도 하며 나라에 큰 공훈이 있거나 도덕성과 학문이 높으신 분에 대해 신주를 땅에 묻지 않고 사당(祠 堂)에 영구히 두면서 제사를 지내는 것이 허락된 신위(神 位)를 말한다. 특별히 불천위를 모시는 사당을 부조묘(不 祧 廟)라 한다. 본래 제사는 고조까지 4대를 봉사(奉 祀)하게 되어 있고 그 위의 조상들은 시제 때 모시게 되어 있으나 불천위에 봉해지면 영구히 제사를 지낼 수 있다.
불천위에는 나라에서 인정한 국불천위(國 不 遷 位)와 유림에서 발의하여 정한 향불천위(=유림불천위), 문중에서 모셔야 한다고 뜻이 모아진 사불천위(私 不 遷 位=문중불천위)가 있다. 국불천위의 대상은 원칙적으로 문묘(文 廟)에 배향되어 있는 사람들을 말하며 왕이나 왕자, 부마 등도 국불천위의 대상이 된다. 일반적으로 향불천위보다는 국불천위가 더 권위있는 것으로 인정되며 향불천위와 사불천위는 조선후기 그 수가 너무 많아져 권위와 질서가 문란해 지는 결과를 낳았다.
가문에 불천위를 모신다는 것은 가문의 영광이므로 불천위제사는 이러한 권위를 드러내는 것으로 시제사보다 휠씬 많은 음식을 차려 제사를 지내게 된다. 대표적으로 온혜리의 퇴계 이황 종가, 하회마을 겸암 류운룡 종가와 서애 류성룡 종가, 봉화 닭실마을 충재 권벌 종가, 의성김씨 학봉 김성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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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남박씨 문중에는 나라에서 인정한 국불천위가 14분계시고 있으나, 현재 국불천위 제사를 옛 방식 대로 고수하고 지내는 분은 평도공, 세양공 부자분 양위로 따로 모시고 있다. 두분의 불천위 사당(別廟)에서 지낸다.
죽은 사람의 신주는 오대봉사를 하기에 일반 사당(家廟)에는 아버지 할아버지 증조핳아버지를 같이 모시고 있으나 별묘(別廟)인 국불천위 사당에서는 불천위 당사자인 본인만 모시는 것이 원칙이다.
영남에 학봉 김성일 선생, 서애 유성룡선생, 대전회덕에 동춘당 송준길선생등 불천위 제사를 지내는 한분씩만 제사를 모신다.
그런데 갑자기 평도공 사당에 문정공 할아버지를 합께 모시자는 의견이 왜 나왔는지 모르겠다.
평도공 불천위 제사는 국가에서 내려준 제사이고 문정공은 4대 봉사후 신주를 조매(祧埋)한 시제를 지내는제사다.
문정공은 우리나라 역사상 처음 등재된 인물이기는 하지만 반남박씨 증시조인 평도공 만큼 역사적인 인물은 아니다. 비록 문중에서는 문정공의 위상이 평도공보다 높다한들 국가에서 보는 평가를 다르다. 그러고 문정공은 문중에서 결정한 사불천위도 아니고, 조매(祧埋)한 신주를 평도공 사당에 합사한다는 것은 말도안된다. 그렇게 합사를 한다면 평도공의 불천위사당이 일반 사당인 가묘로 격하(格下)되는 것이다.
평도공 사당에 문정공을 함께 모신다면 주벽(主壁)은 어떤분을 모실까? 불천위의 주인공인 평도공이 주벽인가 아니면 아버지인 문정공이 주벽이 되나 고민되네
문정공의 산소가 휴전선 이북에 있아 그곳에서 제사를 모실수 없기에 반남 상로재에서 잘 모시고 있는데 굳이 평도공 사당에 시주를 모시고 싶다는 이유를 알수가 없다. 꼭 신주를 모시고 싶다면 상로제에 감실를 설치하여 여기에 신주를 모시면 될 것 아닌가.
문정공의 제사는 구호서원에서도 지내고 있고 그러기에 대종중에서 구호서원에 많은 금액을 보조하기도 한다
어제 12월 12일에 행사가 있어 전(前) 현직 종사전례위원 4분과 같은 자리를 할수있어서 함게 문의를 해본결과 뚜렸한 이유도 없다. 그저 문정공과 평도공이 부자 관계이니까 합설을 하자는 개인의견, 또 다를 분은 지금은 합설을 하였다가 문정공 사당을 새로 지어서 옮기자는 분도 있다. 그때그때 생각나는데로 중구난방(衆口難防)식의 답변만 들었다. 불천위사당에 다른분과 합설하는 사례도 없고 근거도 없다, 어떤 근거로 합설을 하자는 의견이 나왔나 종사전례위원들의 명확한 근거가 있는 답변을 듣고 싶다.
지금까지 반남 상로재에서 잘 모시고 있는 제사를 왜 굳이 평도공 불천위 사당에 합설을 하자는가 이는 반남밖씨의 영광스러운 불천위 사당을 일반 사당인 가묘(家廟)로 격하시키는 것이 옳은 일인지, 종사전례위원들이 불천위사당과 일반 사당인 가묘(家廟)를 구별할줄 몰라서 생긴 해프닝이 아닌지 다시 많은 분들의 의견을 듣고 결정을 했으면 한다.
평도공 사당 편액명을 정하기 전에 평도공 사당에 문정공 신주 모시는 일이 타당한것인지를 먼저 정하십시오
前 종사유사 박태서
댓글목록
종산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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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글을 올려주어 잘보았습니다. 올리신 내용이 틀리신 내용이 아닙니다. 올리신 내용은 조선시대에 정해놓은 규측대로 많은 자료를 준비하셨군요. 감사히 잘보았습니다.
1, 반남의 상로제에 모시는 것을 주장 하셨는데. 齋재게할 재. 字입니다. 상로재는 제물을 준비하
고 재기를 보관하고 도포옷을 보관과 준비하는 곳이지 祭祀를 지내는 장소가 아닙니다.
주장하신 대로라면 상로제에서는 제사를 지낼수가 없는 장소인데. 언잰가 부터 제사를 지내 왔
습니다 왜 여기에 대하여는 이의를 제기 안하십니까.
2, 6,25 사변이후 문정공 선조께서 북한개성에 묘가 있고. 그곳이 휴전선 근방이라 현제로서는
위치를 파악할수 없어 우리 자손들이 상주하는 곳에 장소를 마련하여 제사를 지내자는 것을 불
천이의 품격을 따지면 할 말은 없습니다. 그러나 문정공 성조는 반남박씨의 손이라면 불천지이
보다도 더 높은 분으로 격식높여 모시고 싶은것이 자손된 생각입니다.
저는 사당을 새로 건립하여 모시고 싶지만 형편이 거기에 못믿치니 그럼 어떻게 하나?
하고 고민 끝에 대안이 문산에 평도공 사당에 우리나라가 통일이 될때까지라도 같이 모시자는
제안이 몇군대서 문의가 있어 예의는 아니지만 고민끝에 중지를 모아 결정한 것인데. 여러분이
끝까지 반대 하시면 안되지만 다수의 의견이라면 수용하여야 될 것으로 사료됩니다.
임시로 사당에 모시는 데 주향은 이서위상으로 서쪽을 상으로 자리를 마련하면 좋을 것 같습니
다. 옛날에도 불천이 사당이 없는 사람들은 사당안에 제일 중심에 소목지서로 주향을 중심에
약간높게 모시는 가정도 있었습니다. 불천이라고 단독으로 사당이 있던것은 아닙니다.
형편이 좋은 집안은 종가댁 동쪽에 불천이 사당이 있었고. 종가댁 서쪽에 일반 사당이 있었습
니다. 불천이는 生 죽지 않았다. 하여 死者들과 방을 같이 사용을 하지 않았다 라는 내용이다.
지금 새로운 시대에 옛날 조선시대를 거론한다면 할일이 없습니다.
儒敎도 종교입니다. 그렇다면 종사문제도 많은 문제가 있습니다. 종중에서 행사하는 모든 제례
문제는 유교의 행사입니다. 타교인이 이래라 저래라 참석할 자격이 있는지요.
옛날 같으면 생각지도 못할 일인니다만 세상은 변하고 있습니다. 지금 옛날것을 고집 한다면
지금 일어나는 모든 문제를 다 원상으로 되 돌릴수 있는지요 묻고 십습니다.
나는 우리가 편하자고 편리하게 주장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귀하께서 하신 말씀이 틀리다는
내용은 아니고 선조님이 돌아가시고 갈곳이 없어서 허공을 떠다니고 계신 문정공 선조님을 생
각하면 우리가 집에서 부모님의 제사를 지내면서 박상충(문정공)선조님을 생각들이나 해보셨
는지요. 우리가 기제를 모시자는 것은 어차피 사불천이 입니다. 우선 문중에서 중지를 모아서
사불천이로 모실것이냐를 먼저 토론을 하여주심이 순서 입니다. 사당으로 모신다면 기제를 모
시는 순서 입니다.
이런 모든 문제는 찬성과 반대가 있게 마련입니다. 대종중 집행부에서 종원들의 중지를 모아
반대종원이 많으면 안되고. 찬성종원의 수가 많으면 시행 하는 것이 순서 입니다.
태서씨 하시는 말씀은 잘 보았습니다 조선시대 같으면 명문집안이라 하는 집안에서 이런 어려
운 문제를 발생하면 안되겠지요. 태서씨의 심정은 잘 알겠습니다.
자료를 수집 하시느랴 수고가 많으 셨습니다. 태서씨의 역사고전에 대한 지식을 인정하고 많은
충고를 바랍니다.
위에 내용이 무리하였다면 이해하여 보아 주십이요 글 재주가 없어서 잘 못합니다.
서포공 후 박승석. 드림.
한가람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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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각은 음식 준비하고 제사에 대한 비품을 보관하는 곳이라고
상로재에서 제사 지내는 것이 부당하다고 하시는데
김포제사는 대곡재 재각에서 지내는 것이 아닌지, 논산 영사재에서 참봉공 제사를 지냅니다.
남곽공제사도 재각에서, 부솔공 제사도 비취재에서 지내고 있습니다.
재각에서 제사지내는 일이 어제 오늘의 상황이 아닙니다.
평도공 사당에 모셨다가 통일되면 장단에서 시제를 모실것입니까.
그러면 지금은 시제로 모시 다가 사불천위로 기제사를 드리다가 다시 시제 제사로 모실 것입니까.
통일이 언제됩니까? 10년?, 20년? 김정은이 핵폭탄을 무기로 위협하는 한은 통일이 쉽지 않습니다.
사불천위도 아닌 문정공을 승격해서
국불천위 사당에 사불천위를 모시는 것이 정당하다고 생각하십니까?
성균관에 출입을 하시니까 여러문중 어른 들을 맞나 보실 뗀데
우리나라 어느 문중에서 국불천위 사당에 사불천위를 모신곳이 있습니까?
사불천위 커녕은 향불천위도 함께 모신곳이 없습니다.
영남에 내노라 하는 문중 호서에 유명한 문중 어디에도 국불천위 사당에 부자 분을 함께 모시는 곳이 없습니다.
김장생과 김집은 같은 동국 18현에 문묘에 모셔지고 부자관계 이지만 불천위 사당을 함께 모셔져 있지 않고 따로 따로 모셔 제사를 지냅니다.
문정공을 불천위 사당에 모시면 그때부터 평도공 사당은 일반 사당으로 격하(格下)되는 것입니다.
명문가인 반남박씨 불천위 제사를 지낸다는 것이 얼마나 영광이줄 모르 십니까
성균관에 가시면 여러 문중 분들을 맞나 보실텐데 사계 김장생댁이나, 학봉 김성일 댁 동춘당 송길준댁 퇴계 이황선생댁 어르신 분들에게 자문을 받아 보세요
아무리 시대가 변하더라도 조선시대 정해지 규칙은 규칙대로 지켜야 합니다.
문정공 시제를 상로재에서 지내는데 잘못된 것이 있습니까, 불편한 일이 있습니까.
6.25 이후 몇십년간을 아무 탈 없이 잘 지내던 제사를 바꾸자는 의도가 무엇입니까.
여러 사람의 중지를 모아서 결정 지었다고 하는데 10 사람도 안되는 종사 전례위원들의 소수의견이 전종원을 대표할 수가 있습니까. 7명의 종사전례 의원중 종사나 전례를 잘 아시는 분이 몇 분이나 됩니까, 몇몇 분은 거수기 노릇이나 하다가 회의를 마칩니다. 나도 몇 년전에는 종사전례위원을 지냈기에 회의진행 분위기는 알 수 있습니다.
종사전례위원장외 한 두사람 의견 비슷하면 몰아부쳐서 회의를 이끌고가는 진행방식 안보아도 뻔합니다.
다수의 의견이라고 하지만 다수의견이 여자를 남자로 바꿀수 있습니까. 다수의 의견이라는 명제는 가장 민주주의 방식 같으면서 거짓을 만드는 맹점이 있습니다. 다수의 의견이라고 옳은 것은 아닙니다. 원칙은 원칙대로 가야합니다.
한번의 잘못은 오랜시간을 우리를 어려움속에 빠트립니다.
임시로 사당에 모시는데 주향(주벽)은 이서위상으로 서쪽에 모시자는데
누가 주향이 되느냐가 문제입니다
문정공과 평도공은 부자관계기 때문에 문정공이 서쪽으로 모시면 된다고 하는데 그것은 가문에 내부 문제이자
국가에서 내려준 평도공이 불천위인데 사불천위를 상위(上位)인 서쪽에 모시고 주인공인 평동공은 하위(下位)인 동쪽으로 모신다는 것은 모순이 아닌지 생각해보셨나요
국불천위 를 일반사당에 후손들과 함께 모신곳이 있다고 하시는데 구체적으로 사례를 열거해주셨으면 합니다. 만약에 있다하더라고 불천위 사당이 준비가 않되어 불천위를 일반사당에 모시는 것이계지요, 불천위가 일반사당에 세들어 가는 것과 같습니다.
불천위 사당에는 일반인이 절대 합설할수가 없다는것을 알고 계셔야 합니다.
아무리 시대가 변한다 하더라도 옛날의 좋은 점은 지켜야 합니다.
조상님의 돌아시고 갈곳이 없어 허공을 떠돌아 다니신다고 하는데 우리가 남북이 갈라져 장단에 가서 시제를 못지내고 상로재에서 제사를 모시고 있는데 왜 허공을 떠돌아 다닌다고 하십니까. 그렇다면 묘가 실전이 되어 단에서 모시는 급제공과 밀직공도 갈곳이 없어 허공을 떠돌아 다니시껬네요, 그러면 이두분도 사불천위로 모셔서 평도공 사당에 합사하시지오
대종중 집행부에서 제안해서 찬성이 많으면 시행하고 반대가 많으면 폐기하자는 의견인데 내가 대종중에서 10년가 근무를 했고 대종중에 출입한지 20년이 됬지만 대종중에서 제안한 안건이 반대를 표하는 일이 거의없고 대종중에서 제출한 안건은 대종중을 믿기 때문인지 모두가 찬성을 한다.
몇십년간을 아무탈 없이 상로재에서 지내던 제사를 무리를 해가며 원칙에도 없는 평도공 사당에 합설을 할려는 의도는 무었인지 원칙을 어겨가면서 상로재에서 제사지내는것과 평도공의 사당에서 제사지내려고 하는 차이는 무었인가. 평도공사당에서 제사를 지내면 문정공 위상이 더 높아 지는것인지. 왜 쓸데없는 일에 신경을 쓰는 이유를 모르겠다.
문정공제사를 상로재에서 지내는 것이 불편하거나 위상이 떨어지면 차라리 김포 대곡재에 감실을 만들어 지내는것이 어떻할까 제의를 해본다
불천위 사당에 평도공외에 다른분을 합설하는 것은 원칙에 벗어난 행위다.
너무 서두르지 마세요 천천히 중지를 모으고 원리원칙에 의해서 진행하기를 바랍니다.
종산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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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가지만 말씀 드립니다
사계, 동춘당, 퇴계, 유명한 분들은 명문가는 서원에 배양 되어 있는 분들입니다.
우리 집안 문제는 우리가 해결하기를 바랍니니다.
문제 건의;
문정공 선조님을 문산에(평도공사당) 같이 모시자는 주장은 대구에 모 종원이 서면으로 대종중에 건의 한 문제입니다.
대종중 전례위원자격도 없는 전례 위원이 몆 사람이 주장을 하여 결정한 사항으로 몰아 가시는데 당시에
대종중 도유사 부도유사 총무유사 등 여러 명이 같이 있는 장소에서 결정된 사항입니다.
승혁.문양. 승석. 만춘.찬혁.기타 몇분이 같이 있었지만 이 분들은 새로 사당을 마련 하자는 주장 이었지만 자금 문제가 있으니 평도공 사당을 주장한 대구의 의견을 따라 하는 것도 좋겠다고 주장을 하므로 이 건이 나온 것이지 자격 미달자 들이 탁상공론으로 결정한 사항이 아닙니다
문제
신주는 어떻게 하느냐 까지 문제가 나왔습니다.
새로 만들자 (신주)를 여기서 난감한 문제가 발생하여 여러분이 논의 끝에 어차피 예법에 맞지는 안치만 새로 만들되 밤나무로 옛날 신주 모양 잘 만들어 보고 감실을 정식으로 만들어서 모시도록 하자고 결의를 본 것입니다.
최종 결정은 도유사가 결정을 한 문제입니다.
그 후로 오창공 종손과 내가 용인에 옛날 가구만 만드는 가구 제작소를 방문하여 만드는 문제를 협의 하였던 일이 있었습니다. 그런대 공장 사장께서는 요즘 많이들 만들어 간다는 이야기를 우리에게 하여 주었습니다.
그런데 일은 진척이 안되고 집행부가 바뀌면서 지금 까지 진척이 없이 내려온 것이고 문제는 종원일부가 반대하는 종원이 있었서 진전이 안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이렇게 된 문제를 당시에 종중에 모여 회의를 진행한 종사전례자문 위원들을 자격 미달자로 취급을 하는 분은 얼마나 지식과 학식이 높으신지는 모르겠으나. 정식적으로 서면으로 반대 의사를 대종중에 표시 하는 것이 옳은 일이지 그 자리에 모인 분들을 자격을 운운하는 것은 모순된 행동입니다. 지금도 시행이 안된 상태에서 성균관에가서 물러보라 운운 하면서 몰아 붙이는 것은, 그러는 사람이 더 문제입니다.
내가 몇일전에 전통문답해설진(초암의례해설집)을 보니 사당 문제가 만이 실려 있어서 자세히 살펴보니 사당에 불천위신위가 주벽으로 계신고 그앞에 4대의 신이 있는데 초상이 나서 동쪽문으로 신주가 들어오면 어떻게 하느냐로 물으니 그 분 말씀이 동쪽에서 새로 들어오면 서쪽에 5대는 방을 비어주고 산으로 올라가야 하니 자리를 양보하는 것이고, 서쪽으로 밀려 나갈 때에는 불천지위 앞을 지나 나가야 하고, 불천지위 신주는 그 자리에 있으면 된 다라는 답변이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이 사당은 다른 신과 같이 모시는 집안으로 알고 있으며 안된다는 주장은 절대적이지 않음이 판단됩니다.
상로재에서 제사(霜露齋)
상로재는 齋,재계할,재 字입니다. 齋閣은 제기와 제사지내는 모든 물건들을 보관하고 제사때에는 제물을 준비하는 건물로 알고 있습니다.
사당을 준비를 못한 상태이니 임시로 재각에서 지내다 보니 지금이시대 까지 온 것 같습니다.
옛날 어른 들이 그 절차를 몰라서 상로재에서 제사를 올렸겠습니까.
그래서 종중에 경제적으로 좀 여유가 있으니 재대로 사당을 지어 모시는 것이 합당하여 건의 했던 것입니다
차라리 밖에 단을 북쪽을 향하여 설치하여 제사를 모시고 개성에 있는 포증기사비도 새로 새겨 같이 모시는 것이 문정공 선조님의 위상도 존경하고 우리가 이렇게 하므로 자손된 도리를 하는 것이 올치 않겠나 합니다. 조상은 자손들이 모시는 것이지 조상들은 모셔 달라고 요청을 안 합니다.
여기에는 이론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어느 묘를 가도 묘비와 석물은 자손들이 다 새운 것이니 돌아가셔서 땅속에 계신 분들이 새워 놓은 것이 아닙니다
이상과 같은 문제로 종원분 들과 문제를 만들고 십지 않습니다
내용을 보시고 잘못된 점이 있으면 이해를 바랍니다.
반남박씨
전전례자문위원장 박 승석 드림
한가람님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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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직도 국불천위가 어떻한것인지 이해를 못하시는 것 같은데
• 국불천위 : 국가에 지대한 공을 세우거나 학문이 높아 백성으로부터 추앙을 받는 인물로서 임금이 교지로서 정한다. 대상은 원칙적으로 문묘(文廟)에 종사된 동방 18현이다. 이 밖에도 시호를 받은 2품 이상의 관리로서 국가적 인물(왕과 왕자·부마,정 공신 등)이 그 대상에 속한다.
본래 유교에서는 사대봉사(四代奉祀)라고 하여 제주의 4대조(부, 조부, 증조부, 고조부)까지의 제사를 지내는 것이 기본이었고, 이게 넘어가면 매안(埋安)이라고 하여 신위를 사당에서 옮겨 땅에 묻고 더 이상 제사를 지내지 않았다
그러나 예외적으로 고인이 특별히 출세했던 위인이거나 덕망이 있는 경우 신위(神位)를 옮기지(遷) 않고(不) 후손들이 대대로 계속 제사를 지내는 것을 허용했는데, 이것이 바로 불천위이다. 특히 국가에서 나라의 위인을 불천위로 지정하기도 했는데, 이는 그 집안의 대단한 영예로 간주되었다.
한편 한 집에 불천위가 2위 이상 있으면 각각 사당을 따로 만드는 것이 원칙이다.
실제로 사계 김장생과 신독재 김집은 부자가 각각 동국18현이고 국불천위이다
1 평도공은 태종때 공신으로 국불천위에 올랐으며 구호서원에 배향되어 년 2회 춘추로 제사지내고 있고 문정공도 주향으로 모셔져 있다. 서원에서는 여러분들이 모셔져 있을수 있으나 국불천위 사당에는 당사자만 홀로 모시는 것이 불멸의 원칙이다 .
2 문정공을 문산에서 모시자는 것이 판관공의 대구 춘서씨라는 것이 오래전부터 있던 이야기입니다.
종사전례위원회와 집행부 전원에 찬성한 것 같이 이야기 하는데 내가 개별 면담결과 반대하는 분이 있다는 것이다.
3 사대봉사(四代奉祀)라고 하여 제주의 4대조(부, 조부, 증조부, 고조부)까지의 제사를 지내는 것이 기본이었고, 이게 넘어가면 매안(埋安)이라고 하여 신위를 사당에서 옮겨 땅에 묻고 더 이상 제사를 지내지 않았다.
매안 했던 신주를 다시 복원한다고 ?
4 불천위 제사라도 불천위 제사 후손이 불천위 사당을 준비 못했을 경우 불천위를 일반 사당 중간에 모시는 편법이 있다. 쉽게 이야기 하자면 국불천위가 일반사당에 셋방 살이 하는 경우 이야기다.
일반적인 경우 국불천위 사당에는 타인을 절대 배설할 수가 없는 것이 원칙이다
평도공과 문정공을 국불천위 사당에 합께 모신다면 그때부터 평도공의 불천위 사당은 일반사 당으로 격하된다.
5 문정공 제사를 사당이 없어서 霜露齋에서 지내는 것이 잘 못되었다는 것인지
김포 대곡제 제사는 재각에서 지내는 것이 아닌지. 남곽공도 재실에서, 부솔공도 재실에서 제사지 낸다.
문정공 제사를 상로재에서 지내는 것과 불법으로 평도공 사당으로 합사해 재내는 것은 무슨 차이가 있는가?
문정공의 제사를 평도공 사당에서 지내면 문정공 품위가 상승되는지. 문정공의 품위가 격상되다 하더라로 국가적으로 격상되는 것이 아니라 종중내에서만 상승되는 것이다.
문정공의 제사를 호장공 묘역에서 지낼 때는 전국에서 600명의상의 종원에 모인 가운데 축제 분위기 속에서 경사로제사를 지낸다. 하지만
문사에서 평도공 불천위제사, 한식절사, 중양절절사에 제사를 위해 모이는 종원은 50분도 안된다.
지난 가을 중양절 절사 때는 13명이 모였다는 말을 들었다. 600 여분이 모이는 곳에서 제사지내는것이 좋은지 13명 밖에 안모이는 곳에서 제사를 지내는 것이 좋온지 판단하십시오.. 문정공의 제사를 문산에서 지낸다고 하면 더많은 분이 참석하실지 의문입니다.
명분도 없고 실익도 없이 제사를 옮기려는 생각은 접었으면 합니다.
상로재에서 지방 붙이고 제사를 지내는 것이 불편하면 감실을 설치하고 신주를 모시던지 그것도 안좋으면
대곡재에 감실을 만들어 신주를 모시는 것이 어떤지, 제안을 한다.
박태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