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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독립운동가 영주 박계양

페이지 정보

no_profile 한가람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22-06-21 14:22 조회1,753회 댓글4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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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 박계양(朴啓陽)

일제강점기 영주 출신의 독립운동가.
박계양(朴 啓 陽)[1888~1937]1919년 봉화군 봉성면에서 독립군 자금 모집 활동을 전개하였으며, 혁신공보(革 新 公 報)라는 제목의 격문을 작성하여 배포하려다 체포되어 징역 1년형의 옥고를 치렀다.
박계양은 지금 영주시 고현동에서 출생하였다.

박계양은 평소 일제의 식민통치에 불만을 품었으며, 민족의 독립을 갈구하였다. 박계양은 마침 중국 상하이[上 海]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가 활동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이전부터 알고 지내던 정응봉(鄭 應 鳳)[일명 정의극(鄭 義 極), 1895~1947]·곽덕규(郭 德 奎) 등과 함께 독립군 자금 모집을 위하여, 부호들에게 군자금을 징수하기로 계획하였다.
정응봉과 곽덕규는 1919924[음력 81] 오전 11시경 봉화군 봉성면 봉성리의 자산가 박규영(朴 奎 永)의 집에 들어가 독립군 자금을 위한 출자를 요구하였으나 돈이 없자 국가를 위해 자금을 준비해 두라고 경고한 뒤 문을 나섰다. 이들은 1919924일 그 마을의 박용하(朴 龍 河) 집에 가서 군자금을 요청하였으나, 역시 돈이 없자 준비를 해 두면 다시 오겠다고 말한 뒤 돌아갔다. 그 뒤 한두 차례 다른 사람을 보내 출금을 촉구하던 중 19191115일 박계양과 정응봉이 체포되면서 중단되었다.
이와 별도로 박계양은 한국이 일제의 지배를 벗어나 완전한 독립국이 되게 하려는 계획으로 정응봉·류종렬(柳 宗 烈)과 셋이서 문경군 농암면 율수리 신철균(申 喆 均)의 집에서 혁신공보라는 격문을 작성했다. 한국의 독립과 서울의 독립운동 청년단의 활동 및 독립군 자금을 위한 부호들의 협조 등과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격문을 널리 알리기 위해 각 면사무소에 우송하거나 사람들이 모여 있는 장소에 배포하고자 하였다. 그러나 19191115일 순찰 중이던 일본 경찰에게 발각되어 문서는 배포해 보지도 못한 채 체포되고 말았다.
박계양은 1920123일 대구지방법원 안동지청에서 대정 8[1919] 제령 제7위반으로 징역 2년형을 선고받았다. 이에 항소하여 1920226일 대구복심법원에서 징역 1년으로 감형되어 옥고를 치렀다.
박계양은 2009년 건국포장에 추서되었다.

댓글목록

한가람님의 댓글

profile_image no_profile 한가람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영주 출신 박계양 선생은 판관공 후손인듯한데  족보를 검색을 했으니  자료를 찾지 못했습니다.
박계양선생에 대하여 아시는 분은  자료를 댓글에 올려주시면  종중역사 연구에 도움에 될것입니다.

박광춘님의 댓글

profile_image no_profile 한가람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판관공파
육우당[회무]장손가의 둘째집으로 문과 합격하신 좌랑공[인기] 아랫대입니다.
재학~제성~
ㆍ선양
ㆍ희양
ㆍ계양(고종무자생1888- 정축졸1937 )
 = 안동권씨 [부] 의관 권덕진
계양 ~ 승경 ~ 호서(범서 ) 1932년생 화랑무공훈장

4kraphs8님의 댓글

profile_image no_profile 4kraphs8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

박광춘님, 족보 검색하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박계양 선생은 독립운동의 공적을 인정 받아 2009년 건국포장이 추서되었고, 2015년 국립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제5묘역 67호에 옮겨 안장되셨습니다. 세보에는 이런 기록이 미쳐 등재되지 못한 것으로 보입니다.

1888년 4월 28일에 태어나셔서 1937년 10월 17일에 세상을 떠나셨다고 합니다. 세보에는 10월 14일에 졸(卒)하신 것으로 나와 있습니다. 어떤 자료에는 12월 17일로 되어 있는 것도 있습니다. 현재로서는 정확한 일자를 확인할 수 없지만, 1958년 간행 무술보에 10월 14일로 되어있으니 세보 기록이 맞지 않을까 감히 추단해 봅니다.

참고:
세보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박계양 선생께서는 9세 승지공(휘 숙䃞: 판관공의 아드님)의 중자(仲子)이신 10세 가선공(휘 진璡)의 12세혈손이십니다. 박계양 선생의 증조부 휘 표중(標中) 할아버지께서 21촌 족숙 휘 시일(時逸) 할아버지에게 입양되셨습니다. 시일 할아버지는 좌랑공(휘 인기仁基)의 현손이십니다.

한가람님, 자료 찾으시느라 노고가 크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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