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첨지중추부사 공 휘 일원(一源) 사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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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한우홈페이지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16-03-29 10:49 조회2,075회 댓글0건

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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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일대 지도.jpg


첨지중추부사 공 휘 일원 사략
(僉知中樞府事 公 諱 一源 史略)

공(公)의 휘(諱)는 일원(一源)이오 자(字)는 숙이(肅而)시니
활당공(活棠公) 휘(諱) 동현(東賢)의 6대손으로서
다음 대(代)는 휘(諱)가 병(炳)(목사(牧使))이시오
다음은 휘(諱) 세주(世周)(증이조참판(贈吏曹參判))이요
다음은 휘(諱) 태경(泰慶)이요
다음은 휘(諱) 필중(弼重)(공주판관(公州判官))이요
다음이 선고(先考)인 휘(諱) 사천(師天)으로 비()는 경주(慶州) 이공(李公) 한곤(漢坤)의 따님이니 공(公)을 생(生) 하시고 두 분 다 일찍 몰(沒) 하시니 공(公)은 조부(祖父)의 슬하(膝下)에서 자라셨다.
    
     - 공(公)의 약력(略歷) -
1715년 을미(乙未) 숙종(肅宗) 41년 생(生)
1741년 신유(辛酉) 영조(英祖) 17년 생원(生員)
1762년 임오(壬午) 영조(英祖) ( ? )년 익위사(翊衛司) 사어(司禦)
1772년 임진(壬辰) 영조(英祖) 48년 아산현감(牙山縣監)
1770년대 낭관(郎官)
1781년 신축(辛丑) 정조(正祖) 5년 추관지(秋官志) 편찬(編纂) 완성(完成).정조(正祖) 임금께 드림.
1788년 무신(戊申) 정조(正祖) 11년 왕명(王命)에 의한 탁지지(度支志) 편찬(編纂)
완성(完成).
관(官) 한성부(漢城府) 서윤(庶尹)을 지나 중추부(中樞府) 첨지사(僉知事)가 되심. 계(階) 통정대부(通政大夫).
1791년 신해(辛亥) 정조(正祖) 15년(年) 11월(月) 14일(日) 졸(卒).(수(壽) 77세(歲))

—. 문화대백과사전의 박일원(朴一源) 항목(項目)
조선(朝鮮) 후기의 문신(文臣) 본관(本官)은 반남(潘南) 아버지는 사천(師天)이다.
음서(蔭敍)로 관직(官職)에 나아가 영조(英祖) 말년(末年)에 아산(牙山) 현감(縣監)으로 재직 하였으며 정조연간에 낭관(郎官)으로 활동 하였다. 1781년(正祖 5년) 형조판서(刑曹判書) 김노진(金魯鎭)의 위촉(委囑)으로 실무자로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형조(刑曹)에 대한 기록을 모아 추관지(秋官志) 10권(券) 10책(冊)을 편찬(編纂)하고 이어 정조(正祖)의 명(命)으로 탁지지(度支志) 22권(券) 10책(冊)을 편찬(編纂) 하였다. 관력(官力)이나 신상(身上)에 대한 사항을 자세히 알기 어려운 인물(人物)이지만 임금의 명(命)을 받아 책(冊)을 편찬(編纂) 하였다거나 그가 편찬(編纂)한 책(冊)을 정조(正祖)가 직접 거론하며, “문장(文章)이 있다.” 한 것을 보아 당대(當代)의 재사(才士)로 이름이 높았음을 짐작 할 수 있다.    
- 출처 : 문화대백과사전 -

별첨1.
추관지(秋官志)
조선(朝鮮) 정조연간(正祖年間) 형조판서(刑曹判書) 김노진(金魯鎭 : 1735~88)의 위촉(委囑)에 따라 낭관(郎官) 박 일원(朴一源)이 형조(刑曹)의 소관사무(所管事務)와 형사 처벌의 사례(事例)를 모아 편집(編輯) 한 책(冊).

10권(卷) 10책(冊). 필사본(筆寫本). 1781년(正祖 5년) 박일원(朴一源)은 형정(刑政), 재판(裁判)에 참고하려고 국초(國初) 이래의 각종 법례(法例), 판례(判例), 관례(官例)를 모아 5편(編)의 <秋官志>를 사찬(私撰)했다.
다음 해에 정조(正祖)의 명(命)으로 의금부(義禁府)에 관한 사례(事例)를 첨가(添加)했고, 1791년에 증보(增補)되었다. 책의 서문(序文)은 김노진(金魯鎭)이, 소지(小識)는 박일원(朴一源)이 지었는데, 춘추관(春秋館) 편찬(編纂)에 자극되어 만들었음을 밝히고 있다. 범례(凡例)는 최집(;輯), 분편(分編), 수록(首錄), 연혁, 첨삭, 세년(歲年), 성명, 증보의 8항을 수록했고, 자료는 인조 이전이 희귀하다는 이유로 효종 이후 영 정 시대가 대부분임을 설명했고, 편절의 분류와 내용 순위를 기술했다. 이 책에서 연호는 우리나라의 세년을 이용했으며, 원편(原編)에는 이두를 사용했다.

- 중략 -
이 책은 조선 후기 사회변화에 따른 형정정비의 필요성에서 편찬되었으며 이 분야 연구의 기본 사료가 된다. 1939년 조선 총독부 중추원이 활자본으로 간행했으며, 1975년 법제처에서 번역 출간했다. 규장각에 소장되어 있다.


별첨2.
탁지지 (度支志)
조선시대 호조(戶曹)의 제반사례(諸般事例)와 연혁 등을 모아 엮은 책.
21권(卷) 10책(冊). 필사본(筆寫本). 정조(正祖)의 명(命)으로 1788년(正祖 12년) 탁지랑(度支郞) 박일원(朴一源)이 편찬(編纂)했으며, 1796년 박일원(朴一源)의 초고본(草稿本)을 선사(繕寫)하여 호조(戶曹)에 비치(備置)하게 했다.

박일원(朴一源)은 약력(略曆)은 알 수 없으나 1781년 형조판서(刑曹判書) 김노진(金魯鎭)의 위촉(委囑)으로 추관지(秋官志)를 편찬(編纂)한 사람이다. 탁지(度支)라는 것은 탁용지비(度用支費)의 약칭(略稱)으로, 호조(戶曹)를 가리키는 말이다. 권두(權頭)에 편제(編制)의 원칙(原則)을 밝히는 범례(凡例) 7조가 실려 있다.

- 중략 -
각 항목별로 전교(傳敎)를 앞에 싣고 이어 절목(節目), 사례(事例), 사실(事實)을 실었다. 다른 연대기(年代記) 자료(資料)에서 찾아 볼 수 없는 통계(統計) 자료(資料)와 절목(節目)이 많이 실려 있다. 조선 후기 재정(財政)의 실제(實際) 운영(運營) 상황(狀況)을 파악(把握)하는 데 도움이 되며, 중세(中世) 해체기(解體記)의 사회 경제 구조의 변화와 실태(實態)를 파악(把握)하는 데 중요한 자료이다. 1976년 서울대학교(서울大學校)에서 영인(影印), 간행 했다. 규장각(奎章閣)에 소장(所藏)되어 있다.


이와 같이
후손(後孫) 한우(漢雨)가 간추려 썼습니다.
                                                丁亥 2007年 11月 日.




탁지지요약
호조(戶曹)의 옛 사례(事例)를 모아서 내편 ·외편으로 엮은 책.

구분 필사본
저자 박일원(朴一源) 편수
시대 1788년(조선 정조 12) 간행
소장 규장각도서

본문
필사본. 20권 10책. 규장각도서. 1788년(정조 12) 간행. 정조의 명에 의해서 편찬하였다. 내편은 호조의 관제 ·직장(職掌) ·늠록(祿) ·관사(館舍) ·잡의(雜儀) ·고적(古蹟) 등에 관한 것으로 본론이 되고, 외편은 호조 안에 속하는 판적(版籍) ·회계 ·경비 등 삼사(三司)의 문부(文簿)로서 뒷날 참고가 될 만한 것을 모았다.

내편의 책머리에는 아사전도(衙舍全圖)와 탁지지총요(度支志總要)를 실었고, 외편의 판적사에는 판도(版圖) ·전제(田制) ·조전(漕轉) ·재용(財用) ·공헌(貢獻)의 5부(部), 회계사는 창고(倉庫) ·해유(解由) ·조적()의 3부, 경비사는 오례(五禮) ·경용(經用) ·요록(料祿) ·황정(荒政)의 4부로 나누어 적었다.


1. 편찬(編纂)자 및 유래
탁지지(度支志)는 1788년(정조 12년) 호조(戶曹)의 낭관(郎官) 박일원(朴一源)이 왕명을 받들어 조선왕조 후반기 재정의 지침서로 편찬한 것이다. 정조 통치시대는 국가에서 주도하는 각종 편찬사업이 진행되고 있었는데, 그 중 주요관서의 사례를 모아서 훗날 자료로 삼으려는 목적에서 춘관지(春官志) 추관지(秋官志)·규장각지(奎章閣志)·홍문관지(弘文館志) 태학지(太學志) 등 여러 관서(官書)의 책이 편찬되었다. 탁지지 역시 이러한 편찬사업의 연속으로 왕명에 따라 탁지랑(度支郞) 박일원이 편찬한 것인데, 정조는 이후 1796년 박일원의 초고분을 선사(繕寫)하여 호조에 비치하게 하였다.
‘탁지’란 명칭은 ‘탁용지비(度用支費)’의 약칭으로 곧 호조를 가리킨다. 그렇다면 춘관지(春官志)가 예조소관, 추관지(秋官志)가 형조소관임에 비추어 이 책은 호조소관이므로 지관지(地官志)라 불러야 마땅할 것이라 볼 수 있다. 그런데도 이 책을 탁지지라 한 것은 ‘호조’의 실상을 인지시키기 위해서였다. 원래 ‘탁지(度支)’라는 이름은 중국 조위시대(曹魏時代)에 처음으로 나타난 것으로 국가는 지출하는 모든 경비를 예탁(豫度) 하여 사용한다는 것이요, ‘지(志)’는 그 사유와 사실을 기록한다는 뜻이라는 데서 유래한다고 한다.
또 이 저서와 유관한 조선말기의 관청으로 탁지부(度支部)라는 것이 있었는데, 이는 조선시대말 재정·조세·국채·화폐 등 국가전반에 걸쳐 재무행정을 담당했던 관청이었다. 이 ‘탁지부’는 1894년(고종 31)에 호조(戶曹)를 폐지하고 탁지아문(度支衙問)을 만든것을 1895(고종 32)에 개칭했었던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 기록에서, 이 책의 탁지지란 명명은 낯설지 않다.
아쉽게도 편찬자인 박일원의 개인적인 성격이나 배경에 대해서는 자세히 알려지지 않고 있다. 그러나 그가 형조좌랑에 재임할때 추관지를 편찬한 경험이 있었다는 사료, 또 그가 편찬한 추관지·탁지지에 대하여 정조의 칭찬이 있었다는 사료를 통해서 박일원의 개인적 능력이 탁월했었다고 생각된다. 현재 이 책은 규장각도서에 있으며, 1967년 서울대학교에서 영인, 간행하여 널리보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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