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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천면 고다기리<고덕동,하일동>는 평도공의 賜牌地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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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_profile 박태서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5-05-23 12:27 조회2,85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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몇 년 전 종중 교양강좌에 평도공의 사위 어효첨선생이 평동공의 사위가 된 내력과 어효첨 선생의 일대기에 대하여 함종어씨 문정공 종친회 회장, 성균관 부원장이신 어윤경 선생이 강의를 한일이 있다.

 

어효첨 선생의 강의를 준비하기 위하여 함종어씨의 족보 사본을 구하여 조사 중에 구천면(龜川面)이 어효첨 선생의 호() 구천(龜川)과 동일하다는 것이 발견되고 또 어효첨 선생과 부친 어변갑 선생 묘가 그곳에 있기에

구천면 고다기리가 본래 어씨댁 소유의 땅으로

연산군 2년 평도공 묘를 중랑포에서 천장할 때 참판공이 모셔져 있는 사패지인 문산으로 가지 않은 것은 문산은 멀기에 평도공의 외손자 어세겸이 모셔간 것으로 추측 할 수가 있다.

 

야천 할아버지 문강공 혼인 관계를 조사하기 위하여 파평윤씨댁 족보를 보니

평도공의 큰 사위 윤구(尹救)의 묘가 고다기리에 소재하였음을 발견하였고 원평공(原平公) 윤구의 자손에게 확인 결과 고덕동(고다기리)에서 이장하였음을 확인 했고,

또 병술보에 기록된 분산도에도 평도공 묘역 옆에 윤산(尹山)의 기록이 있다. 윤산이란 윤씨네 산이란 뜻이다.

 

평도공의 사녀(四女)와 어효첨선생의 혼인 시기는 대강 평도공의 말년으로 볼 수 있으며

함종어씨 족보에 의하면 어효첨선생은 1405년생 배우자 반남박씨 할머니는

149286세에 돌아가셨으니, 1407년 생으로 기록 되어있다.

평도공의 말년 1420~1422년 이면 어선생은 16~18 박씨할머니는 14~16으로 당시의 결혼 적령기이다.

 

평도공께서 1422년 돌아가신후 분정을 했다고 보면 분정 받은 땅에

1435년 돌아가신 어선생의 부친 어변갑 선생의 묘를 고덕동에 장지를 쓸 수 있고

큰 사위 원평공 윤구선생께서도 장지로 쓸수 있다고 본다.

윤씨댁 족보에 의하면 원평공의 아들 손자 증손자 모두가 이곳에 모셔져 있었다.

두 댁에 분정하고 남은 땅에 평도공을 모신것이라고 한다면

고덕동의 토지는 원래 평도공께서 사패지로 받고 어씨댁과 윤씨댁에 분정한 땅이 아닌가 추측할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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