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천암 범종에 관한 글을 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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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천암 범종에 관한 글을 보고
광주 지회장님의 글
| 4361 | 궁금하여 올립니다궁금하(2) |
관찰력과 애종심에 경의를 표합니다.
그냥 지나쳐 버릴 릴 수도 있는 문제인데 종중 유물에 관한 관심을 가짐은 진정한 애종심 일 것입니다.
저도 한가지 관심이 생기는 것은 이렇습니다.
1. 파손된 범종의 이력과 제원입니다.
2. 현재의 범종크기라면 대종중 서고에 보관하고 관리하기가 쉽지 않겠다는 생각입니다.
3. 대종중에서 장기간 보관관리가 쉽지 않다면 공공 기관에 기탁하는 문제를 검토해보는 것이 어떨까 생각해봅니다.
4. 우선은 만약의 경우를(도난 훼손) 생각하여 사진으로 촬영하여 이력 제원과 함께 대종홈 사진자료실에 올려주시면 하는 바램입니다.
2014.12.27
http://cafe.daum.net/bannampark
pcs13191@daum.net
010-3067-6704
카페지기 박창서
석천암(대종펌)
전남 나주시 반남면 신촌리에 있으며 시조 호장공과 참의공 양위의 묘소를 지키는 재궁이다.
평도공에 이르러 고려의 옛 풍속에 따라 분암(墳庵)을 두고 승려들이 지키며 채벌을 막고 제사를 돕게 하는 스님들이 지키는 재궁이다,
태종조 평도공 휘 은(訔)이 창건하여 전해 내려오다,
남곽공이 목사로 부임한 때 중수하였고 찬성공[휘 세해(世楷)]이 회진에 우거할 때 풍수에 따라 동쪽 취봉 아래로 옮기고 그터는 장지로 삼았다.
영조15년(1739)에 실화로 암자 가운데 보관했던 ①. 호장의 도장 ②. 제기 ③. 고려, 조선조로 부터 전해오전 제전(祭田) 문서 ④. 선조(宣祖)의 교명(敎命) ⑤. 인성왕후(仁聖王后- 인종의 비) 의인왕후(懿仁王后-선조의 비)가 하교 작성하여 발급한 문서 ⑥. 예조에서 본주를 순영한 예조완문 ⑦. 12세손 동열이 본주 목사로 증수한 뒤 작성한 완문 및 곡포를 활급 해준 문건 ⑧. 16세손 필규가 전주 판관으로 있을 때 필사한 권소 ⑨. 필명이 본도에 안찰사로 왔을 때 두 묘표석을 새로 세운뒤 썼던 제문 ⑩. 외 후손인 정협이 본주 수령으로 왔을 때 양묘의 석인과 광명대를 새로 세운 뒤 썼던 제문 ⑪. 여러 후손들이 참배할 때의 고문 및 전곡 활급 문서 등이 모두 소실되었다.
석천암 증수기에는 헌종12년(1846) 상량할 때 재목과 기와는 옛것을 쓰되 간혹 새 재목을 쓰고 횡곽(橫廓) 여섯 칸은 헐어버리고 좌우 두 칸을 덧 붙였다.
2010년 10월에 새 종각과 관리사를 개축하고 해탈문은 금년 개축할 예정

위 대종중 홈 펌 촬영일자??
위 2007.11.11 남곽공 후 박춘서 촬영
2011.10.27 카페지기 박창서 촬영

2014.11. 대종홈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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