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平度公께서는 왜 羅州를 本貫으로 택하셨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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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우 族丈께서 이곳 게시판에 올리시는 글들은 깊은 사색과 철저한 연구를 통해서만 얻을 수 있는 결과들이라 늘 흥미를 가지고 읽고 많은 것을 배우게 됩니다.
그런데 얼마전 <平度公께서는 왜 羅州를 本貫으로 택하셨을까?>라는 제목으로 올려 놓으신 글의 내용은 약간 모호한 부분이 있는 것 같아 감히 한 마디 드리고자 합니다.
제가 잘못 읽은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위의 의문에 대한 한우 族丈님의 답은 <평도공께서 부친이신 문정공의 호(號) "반남(潘南)"을 기휘(忌諱)하시려고 본관을 潘南에서 羅州로 바꾸신 것>이라고 결론을 내리신 듯합니다.
그러나 제 판단으로는 그것이 주요 이유가 아니라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평도공께서 본관을 바꾸신 이유는 매우 분명하다고 봅니다. 그 이유는 바로 태종실록 1412년(태종12) 12월 13일 기사에 그대로 나와 있습니다.
고려초에 현(縣)으로 강등되어 나주목(羅州牧) 임내(任內)의 속현(屬縣: 일종의 호장 자치현)으로 남아 있었던 潘南縣이 이때(태종조) 행정구역 개편과 더불어 폐현(廢縣)되어 나주목에 합쳐집니다. 다시 말해서 반남현은 더 이상 하나의 독자적 행정단위로 존재하지 않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평도공께서 본관을 羅州로 바꾸신 직접적인 이유인 것 같습니다. 행정단위로서의 潘南은 더 이상 존재하지 않고 羅州牧에 "융합"되었으므로 潘南 대신에 羅州라는 이름으로 본관을 바꾸신 것으로 판단됩니다. 따라서 평도공의 군호(君號)도 반성군(潘城君)에서 금천군(錦川君)으로 개호(改號)되신 것입니다. 潘城은 물론 潘南이고, 錦川은 錦城, 즉 羅州를 말하는데 본관의 명칭이 바뀌었으므로 군호도 반성(반남)에서 금성(나주)으로 개칭된 것입니다.
반남현이 폐현되어 나주목에 합쳐질 당시, 나주목 임내의 모든 속현들이 폐현됨으로써 당시 주읍(主邑)인 羅州의 박씨들을 비롯하여 반남박씨, 압해(押海)박씨, 복룡(伏龍)박씨, 종의(從義)박씨, 임성(任城)박씨가 모두 羅州를 본관으로 하게 되어 서로간의 구분이 없어지게 되었습니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바로 계해보(1683) 때 본관을 다시 潘南으로 환원하게 된 것은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는 사실입니다.
한우 族丈님의 연구에 다시 한 번 더 감사와 경의를 표합니다.
승혁 삼가 드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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