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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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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_profile 박승혁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3-09-18 14:14 조회5,26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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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퍼가기금지합니다.>

21세기 자유민주주의 평등사회에 살면서 무슨 양반(兩班) 타령이냐고 비아냥거리실 분도 계시겠지만 마침 추석 연휴라 가족들이 한 자리에 모여 심심풀이 삼아 양반 이야기를 한 번 해 보기로 합시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양반(兩班)이란 원래 "관료 체제를 이루는 동반(東班: 文班)과 서반(西班: 武班)"을 일컫는 말이었다. 이 말은 곧 정1품에서 종9품에 이르는 문ㆍ무 양반의 관료들을 통틀어 지칭하게 되었는데 그 의미가 점차 확장되어 문ㆍ무반 관료들의 가족과 후손들까지 포괄적으로 이르게 되었다.

경국대전
에 의하면 녹봉(祿俸)을 받지 않는 무록직, 별로 하는 일도 없이 직명만 갖는 임시직 성격의 체아직(遞兒職) 등을 포함한 동ㆍ서반(문ㆍ무반) 전체 관직수가 약 5,600개 정도였다. 따라서 위로는 "일인지하 만인지상"이라고 하는 영의정에서 아래로는 말단 관직인 참봉(叅奉)ㆍ훈도(訓導)(동반직), 초관(哨官)ㆍ별장(別將)(서반직) 등에 이르기까지 일정 시기에 조선 전체의 관료수는 약 5,600명에 불과했다. 그나마도 일부 관직은 겸직이어서 실제 관료수는 5,000명이 채 되지 않았다. 이것은 곧, 글자 그대로의 兩班은 5,000명에도 미달했다는 뜻이다.

물론 양반의 의미를 확대하여 양반 관료의 가족들도 양반 속에 넣는다면, 양반 본인을 포함한 개인별 가족수를 10명으로 계산 하더라도 전체 양반의 수는 50,000명에 불과하다. 조선 초기(1400년 경)의 전체 인구를 대략 573만명(통계청 자료)으로 추산한다면(물론 이것은 정확한 숫자가 아님), 이 시기의 양반의 수는 전체 인구의 1%에도 못 미친다. 물론 벼슬을 하고 물러난 사람과 그 가족들도 양반으로 본다고 했을 때, 그 수를 대충 10배로 잡는다고 하더라도 500,000명을 넘지 못한다. 실제로는 동일한 양반 가문 내에서 부자, 형제, 숙질 등 가족 내부의 사람들이 관직을 동시에 점유하는 상황이 흔히 일어났기 때문에 명실상부한 실제 양반의 수는 500,000보다 훨씬 적었을 것으로 판단된다.

아무튼 어느 모로 추산하든 조선 전기의 양반수는 전체 인구의 10% 미만이었음이 거의 확실하다. 이것은 "16세기[선조 시대]까지만 하더라도 전체 인구 가운데 적어도 40% 안팎은 무성[無姓]층(천민층)이 차지했다 ..... 17세기[숙종 시대]까지도 명실상부한 양반층은 10% 미만이었다"는 이수건 교수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대한민국 성씨(姓氏)들은 모두가 한결같이 왕후장상(王侯將相)의 후손이거나 중국(中國) 명문가(名門家)의 후손이라고 하니, 90%를 상회하던 非양반의 후손들은 모두 어디로 사라졌을까??? 이야말로 귀신이 곡을 하거나 아니면 포복절도할 일이다. 21세기 자유민주주의 평등사회에서 양반 타령이라니 ..... 이 무슨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인가! 이 무슨 고양이 하품하는 소리인가!


하하하하하하하! 여러분 다 같이 웃읍시다. 풍성한 한가위를 즐기시기 바라며. 謹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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