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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규수 제네럴 셔먼호 격침후 개화파 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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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_profile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3-09-13 15:17 조회11,550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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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규수, 제너럴 셔먼호 격침 후 개화파가 되다 역사일러스트 / *illust

2010/12/29 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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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규수, 제너럴 셔먼호 격침 후 개화파가 되다

일본 근대화의 아버지가 후쿠자와 유키치라면 조선에는 박규수가 있었다. 연암 박지원의 손자로 김옥균, 박영효, 유길준 등 기라성 같은 개화파 인재를 길러내고 조선 근대화의 시동을 걸었던 인물. 그가 처음부터 개화파는 아니었다. 미국 상선 제너럴 셔먼호를 대동강에서 격침시키고 대원군과 손잡았던 수구파였다. 그가 어떻게 미국과 전쟁을 벌이고 개화파로 변모했는지 그 과정을 살펴보자.

 

미국 상선 제너럴 셔먼호를 화공으로 격침시키다

평안도 관찰사 박규수는 1866년 7월11일 놀라운 보고를 접한다. 대포 2문으로 중무장한 미국 상선 제너럴 셔먼호가 각종 물품을 싣고 중국 천진에서 대동강으로 무단 침입했기 때문이었다.

처음엔 선교사 토머스가 국적을 소개하고 상거래를 위해 온 것이라며 교역을 제안했지만 쇄국 정책을 내세운 조선의 관료였던 박규수는 이양선의 내항과 통상 요구를 거절하고 즉시 출국을 요구했다. 그러나 셔먼호가 만경대 한사정에까지 올라와 이를 제지하던 중군中軍 이현익을 붙잡아 가자 평양성 관민들이 격분, 대치가 격화되었다. 셔먼호는 총과 대포를 쏘았고 강변의 군민은 돌팔매 활 소총으로 맞섰다.

이쯤 해서 셔먼호가 물러갔으면 될 것을 대동강의 수위가 낮아지면서 배가 모래톱에 멈추어서면서 사건이 확대되었다. 화가 난 관민들이 이양선 주위로 몰려가자 셔먼호의 선원들은 긴장과 초조로 총과 대포를 쏘며 저항했고 이 과정에 주민 사망 7명, 부상 5명이 생겼다.

인명 살상이 일어나자 박규수는 화선을 이용한 화공火攻을 가함으로써 셔먼호를 불태워 선원과 선교사 23명 모두가 죽었다. 이 사건은 뒷날 최초의 한미간 전쟁인 신미양요辛未洋擾의 원인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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