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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_profile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3-09-10 15:17 조회2,90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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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와 같은 대종중은 1922년도 설립하고 종약도 제정하였다. 예전에는 종중에 항렬이 높고 학식과 덕망이 높은 분을 뽑아 門長이라고 하였고 그 아래 실무를 맡아 보는 분들을 有司라고 했는데 여러 유사중에 대표를 도유사라고 했다. 현재로 보면 총무유사가 아닌가 생각되고 우리 종중기록물인 1760년 '선묘제궁실록'에 보면 '선조반남선생분암영건통문' 말미에 전승지 弼幹, 지사 弼均...부사 師伯 도유사 ..익찬 師郁 유사..도사 師錫 유사.. 명단이 있다. 아마 문장이 승지를 지낸 필간 선조님이시고 실무를 맡아 보신분이 사백.사욱. 사석 이시며 그 중에 사백 선조님께서 도유사를 지낸것 같다. 찬이님께서 말씀하시는 기록은 2000년도에 발간된 '반남박씨 편람'에 기록된 것으로 이전에는 어디에도 도유사 기록을 찾지를 못했습니다. 편람의 도유사 명단을 보면 임오보, 계해보, 병술보, 을유보에 서문을 쓰신분들과 금평위를 추가 한 듯한 감이 든다. 금평위는 우리종중에서 유명하신 분이고 석천암 중건때 중주적인 일을 하셨기에 도유사로 추대한것이 아니가 한다. 1741년 석천암 중건때 참여한 분들의 명단을 보면 첨지중(추부사) 泰謙, 현감 泰容, 금평위 弼成, 판관 弼重, 정언 弼幹, 판결사 弼理, 교리 弼均 순으로 되어있다. 우리의 도유사제도는 자료가 많지 않아 결론을 지울수는 없으나 앞으로 연구를 해야될 과제가 아닌가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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