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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피징관(被徵官)"과 세보 오역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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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_profile 박승혁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3-06-01 16:46 조회3,915회 댓글0건

본문

<필자의 사전 동의 없이 이 글을 복사, 절취하는 행위를 금지합니다>.

몇 년 전 본 게시판에 "피징관(被徵官)"이 어떤 관직이냐에 대해서 몇몇 종인들께서 논의한 적이 있었다. 당시에 이미 언급되었던 바와 같이, "피징관"이라는 말은 국어사전은 물론, 한자어사전, 한한자전/사전 등에서도 찾아볼 수 없고, 조선왕조실록이나 승정원일기를 비롯하여 기타 역사자료에서도 발견되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경국대전에서도 "피징관"이라는 용어는 없는 것으로 보아 특정한 관직을 가리키는 명사가 아님을 알 수 있다.

당시 이 말이 문제가 되었던 것은, <반남박씨문헌록>에 현석공(휘 世采), 여호공(휘 弼周), 성암공(휘 弼傅), 운창공(휘 性陽) 네 분을 등재하고 그 위의 제목을 "被徵官"이라고 붙여 놓았기 때문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런데 같은 책 <目錄> 말미에 이 용어에 대한 설명을 "儒林이나 大臣의 遷擧로 된 官職"이라고 붙여 놓아 마치 "피징관"이라는 "관직"이 존재했던 것처럼 오해를 할 여지를 남기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논의가 이루어지던 당시에 이미 말했듯이, "피징관"이라는 관직이 별도로 존재했던 것은 아니다. 다만 "(과거 등 공식적인 입사 절차와 상관없이) 나라의 부름(특명)을 받아 등용된 관원(官員)" 정도의 뜻을 가진 조어(造語)로 이해하면 무난할 것이라고 본다. 다시 말해서 "피징관"이라는 관직은 없지만 그냥 <典故大方>에 나오는 "經筵官抄選"과 대강 비슷한 의미로 사용된 말이라고 보면 큰 무리는 없을 듯하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끝나는 것이 아닌 것 같다. 왜냐하면, 최근에 발간된 제8차 세보(임진보)에 "피징관"이라는 용어가 잘못 사용되었다는 주장이 나타났기 때문이다. 실례를 들어, 임진보 5권 80~81쪽에 나오는 성암공(省庵公)(휘 弼傅)의 방주를 보면 다음과 같이 되어 있다.

"..... 을사년 생원(生員) 임인년 피징관(被徵官)이 되었다 벼슬은 자의대부(諮議大夫) 진선(進善)을 역임했고 통정대부(通政大夫) 병조참지(兵曹叅知) 겸 경연관(經筵官)에 이르렀다 ....."

이것은 다음과 같은 구보(舊譜)의 원문(한문)을 국문으로 번역한 것으로 판단된다.

"..... 乙巳生員壬寅被徵官歷諮議進善至通政兵曺叅知兼 經筵官 ....."

최근 태서 종인께서 "官"자를 "被徵"에 붙여 "被徵官"으로 번역한 것은 잘못된 것으로 보인다고 주장하셨는데 이러한 주장은 전적으로 옳은 주장으로 판단된다. 다시 말해서, "官"자는 "被徵"에 붙여서 해석할 것이 아니라 떼어서 뒤에 나오는 말과 연결해야 올바른 번역이 된다는 것이다.


위의 임진보 번역에는 또 하나의 어이 없는 실수가 발견된다. "諮議"를 "諮議大夫"라고 번역해 놓은 것이다. "諮議"는 세자시강원(世子侍講院)의 정7품 관원을 일컫는 말인데 어이 없게도 이것을 마치 품계명으로 오해한 것 같다. 한 마디로 말해 "諮議大夫"라는 품계명은 존재하지 않았다. 혹 "諮議"를 의빈(儀賓) 품계인 자의대부(資義大夫)(종2품 상계)로 착각한 것일까? (참고: 資義大夫는 후에 嘉義大夫로 바뀜).

따라서 구보의 한문은 다음과 같은 뜻으로 번역되는 것이 옳다고 생각된다(한 가지 예로 제시한 것임).

"..... 을사년 생원. 임인년에 조정의 부름을 받다[피징 被徵]. 관직[벼슬]은 자의(諮議), 진선(進善)을 거쳐 통정대부 병조참지 겸 경연관에 이르다. ....."

한문은 띄어쓰기를 하지 않기 때문에 해석하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다. 글자 한 자를 앞으로 붙이느냐 뒤로 붙이느냐에 따라 전혀 다른 뜻이 되어 버리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따라서 번역 실수는 언제나 일어날 수 있다. 한문에 아무리 뛰어난 능력을 가지고 있다 하더라도 배경 지식이 없으면 오역을 하는 경우가 흔하게 일어난다. 주의하고 또 주의하는 수밖에 없다.

우리 세보는 우리만 보는 것이 아니라 도서관과 인터넷을 통해 지구촌 전체에 개방되어 있다. 정말 조심하지 않으면 명문(名門)의 체면에 손상이 갈 수도 있음을 유념해야 한다. 특히 성암공(휘 필부)은 조선조의 대석학 현석공(휘 세채)의 손자가 아니시든가!!!

판관공후 승혁 謹記

(추기: 저는 한문을 잘 모릅니다. 다만 전후 문맥상 이렇게 보는 것이 옳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말씀드린 것뿐입니다. 다른 의도는 없으니 오해 없으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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