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율이시의 전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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棗栗梨柿 의 典據
◎=果實 의 品數
[朱子家禮]에서는[每位設饌之圖]에果實을 단지 [6果]를 品數만 指定하였을 뿐이며 과실의 이름은 언급이 없다,
『南溪』는 [三禮儀 祭饌酌定圖]에 [6果]를 指定하였고 -
『栗谷』은[要訣每位設饌之圖]에[5果]를 指定 하였고
(忌祭墓祭則具果三色湯三色)
[喪禮備要]<每位設饌之圖>에는 [6果]를-
[四禮便覽]<時祭陳饌之圖>에는 [4果]를 -
[家禮增解]<時祭每位設饌之圖>에는 [6果]를 -
[五禮儀]<設饌圖>(9品以上庶人)에는 [1果]를 -
[文公家禮儀節]<丘濬 의 註釋(明,憲宗때)兩位並設饌之圖 >에는 [5果]를-
[士虞禮](儀禮의 編名)에서는 조율(棗栗)을 언급하면서
그 중에 대추가 제일이라 서쪽이다. 라 하였고 다음이 밤이라 하였다.
『性齋』께서 이에 배와 감을 더하여 <棗栗梨柿>라 하셨습니다.
◎=果實 의 上下區分 陳設
여기서 <대추와 밤>은 모두 상하를 구별하여 진설하기란 어려워 어느 예서에서도 과실의 상하 구별 진설에 대한 언급이 없는 것으로 생각 됍니다.
◎[家禮四時祭]=省牲滌器具饌條具祭饌每位果六品
◎[沙溪曰]=今人六品之果若難備四品或兩品庶合禮意
◎[陶庵曰]=凡木實之可食者無不用
◎[孔子曰]=果屬桃爲下祭祀不用
◎[士虞禮]=棗栗棗在西註尙棗棗美據此棗當設果行之首而栗次之
◎[性齋曰]=我東則百果無不産焉如棗栗梨枾李杏之類
허전(許傳)
1797(정조 21)∼1886(고종 23). 조선 후기의 문신. 본관은 양천(陽川). 자는 이로(以老), 호는 성재(性齋). 포천출생. 정언 형(珩)의 아들이다.황덕길(黃德吉)의 문인으로 성호학파(星湖學派)의 계승자가 되었다. 1835년(헌종 1) 39세에 비로소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도평 박원우 조사정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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