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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운수 부사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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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_profile 관리자쪽지보내기 메일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2-10-25 11:26 조회4,85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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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운수부사비 (거창군)


박운수부사비 (거창군)
( 朴雲壽府使碑 , Bakunsubusabi )
경상남도 거창군 거창읍 김천리 216-5
거창읍 중앙에서 거창교를 건너 1km지점 거창 전문대 맞은편에 위치
거창읍 중앙에서 도보로 15분

박운수(朴雲壽)에 대하여
1797년(정조 21)∼1841년(헌종 7). 조선 후기의 문신‧학자. 본관은 반남(潘南). 자는 경룡(景龍), 호는 덕은(德隱) 또는 죽계(竹溪). 서울 출신.

서흥부사(瑞興府使) 박종여(朴宗輿)의 아들이며, 모친은 한산이씨이규복(李奎復)의 딸이다. 할아버지 박윤원(朴胤源)에게 글을 배웠다.

1820년에 문과(文科)에 급제, 1822년에 사용(司勇)이 되었으며, 이듬해 태릉참봉(泰陵參奉)을 거쳐 사과(司果)빙고별제(氷庫別提)를 지냈다. 이어서 사헌부감찰돈령부판관(敦寧府判官)예산현감문화현령(文化縣令) 등을 지냈다.

1829년 가평군수를 거쳐 1833년 거창부사순흥부사 등을 역임하였다. 수령으로 있는 동안 실정(失政)을 많이 고쳐 주민들의 칭송을 받았으며, 특히 순흥부사로 있을 때에 2만6000여석의 허위로 보고된 환곡(還穀)을 정리하여 부민들이 선정비를 세웠다.

글씨에 뛰어나 금석문자도 남아 있다.


★  고종때  총리대신을 지내시고 초대 주미공사를 지내신 죽천 박정양의  조부이시고

거창부사(순조33~현종1)때는  9대 조모  거창신씨의  위토를 장만하셨다.




경신보 세적편 1006쪽

'부사(공府使公) 휘(諱) 운수(雲壽) 묘지명(墓誌銘)‘ 중에서

조상을 모시는 일에 독실(篤實)하였다.

9대조비 신씨(愼氏)의 묘소가 삼가현(三嘉縣)에 있었는데, 위토가 매우 적었으므로 공(公)이 거창부사로 있을 때 제문을 지어서 제사를 드리고 위토를 장만하여 守護토록 보조(補助)하였다

 

行篤於追遠 九代祖妣愼氏墓在三嘉縣墓田甚零星公宰居昌時操文展掃買田舍以補其守護

 

                                        숙재(肅齋) 조병덕(趙秉悳)씀

                         
                                    《덕은 유고(德隱 遺稿)》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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