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짚고 만리성에 올라서서 용 삶고, 봉 굽고, 고래 회쳐 저 푸른 바닷물을 한 잔 술 삼아 이 가슴속에 부어 볼까나
倚劒登臨萬里城 烹龍炮鳳膾長鯨 滄溟水作一杯酒 倒向將軍胸裡傾
- 정문부(鄭文孚, 1565~1624) 〈도온성(到穩城)〉 《農圃先生文集》
이 시는 임진왜란 중 현직관료로서 의병활동을 펼쳤던 정문부의 작품이다. 성에 올라 눈앞에 펼쳐진 바다를 바라본 순간 분출된 격정적 감정을 표현한 것으로 거대한 파도에 압도당하지 않고 제압하고자 하는 호기(豪氣)를 볼 수 있다. 영흥(永興) 부사를 거쳐 온성(穩城)으로 부임했을 때 지은 것으로 추정된다.
시인은 온성에 올라 드넓은 바다를 바라보며 한 잔 술로 들이키겠다는 호탕한 표현으로 자신의 기개를 드러내고 있다. 특히 ‘장경(長鯨)’은 ‘거구(巨寇)’를 비유하는 시어로, 당시 전쟁을 초래하여 분탕질을 치고 있던 도이(島夷) 왜적을 가리킨다. 따라서 그러한 고래를 회쳐 안주로 삼고 횡포한 바다 자체를 한 잔 술로 들이마시겠다고 호언(豪言)하는 것은 왜적의 소탕을 자신하는 장수로서의 담대한 기개와 포부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왜적과 대치한 현실적 상황과 실전(實戰) 경험을 통해 갖게 된 종군자(從軍者)의 패기 넘치는 발언으로서 격앙된 시인의 심장박동이 들릴 듯 생동감 넘치는 표현이다. 이러한 표현은 비전시(非戰時) 상황에서 상상력만으로는 갖추기 어려운 것으로 독자의 감정도 더불어 고양시키는 기능을 갖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