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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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찬문…홈페이지 이름으로 검색 작성일16-03-28 11:19 조회1,723회 댓글0건본문
[이덕일 사랑] 孝道
이덕일 역사평론가 newhis19@hanmail.net
입력 : 2007.05.06 22:20
여섯 살 때 원술(袁術)을 만났던 한(漢)나라 육적(陸績)은 귤을 가슴에 숨겼다가 작별인사 도중 떨어지자 집의 노모를 위한 것이라고 대답해 어린 효자의 대명사가 되었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조선 중종 때 서울에 살던 사가(史家)의 노비 붕이(朋伊)가 12세 때 와병 중인 부친에게 손가락을 잘라 약에 피를 섞어 드리니 병이 나았다고 전한다. 자신을 천인으로 만든 부친에 대한 극진한 효도였다. ‘진서(晉書)’ 왕상(王祥)열전에는 자신을 미워하던 계모에게 잉어회를 올리기 위해 겨울 강가에 나가자 저절로 얼음이 깨지면서 잉어가 뛰어올라왔다고 전한다. 조선 세종 때 경상도 영해(寧海)에 살던 박진(朴辰)도 병석의 부친에게 얼음을 깨 잡은 물고기로 회를 올린 효자이다.
효(孝)에 도(道)자가 붙은 것은 효에도 지극한 경지가 있기 때문이다. 원나라 때 24효에 뽑혔던 오맹(吳猛)은 자신이 모기를 쫓으면 부모님께 갈까봐 자진해서 물렸고, 전라도 용안(龍安)현의 이보(李甫)는 꿈속에 한 승려가 나타나 “부친의 병은 산 사람의 뼈를 먹으면 낫는다”고 하자 손가락을 잘라 약을 만들어 아버지의 병을 고치고, 중종 때 관비(官婢)였던 숙미(淑美)도 14세 때 병에 걸린 어머니에게 다리 살을 베어 약에 섞어 드려 병을 고쳤다.
지금은 까마귀가 흉조(凶鳥)지만 과거 선비들은 그리 보지 않았다. 까마귀는 크면 어미에게 먹이를 물어주는 반포지효(反哺之孝)를 행하는 효조(孝鳥)라는 이유인데, 이규보(李奎報)는 ‘하일 즉사(夏日卽事)’에서 “지붕 위에 까마귀 효자가 우네(屋烏啼孝子)”라고 노래했다. 당 나라 백거이(白居易)는 ‘자오야제(慈烏夜啼)’에서 “자애로운 까마귀여, 자애로운 까마귀여, 새 중의 증삼이로다(慈烏復慈烏 鳥中之曾參)”라고 까마귀를 자오(慈烏)라고 노래했다. 현대인은 자식에 대한 사랑은 극진한 반면 대다수가 효도는 잃어버렸다. 자식을 효자로 만드는 유일한 비결은 그 자신이 효자가 되는 길뿐이다. 내일(8일)이 어버이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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