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문자수
  • 오늘136
  • 어제1,165
  • 최대1,363
  • 전체 308,335

자유게시판

국보문화재인 석고각은 왜 없어진 것인가![브레이크뉴스-2012-01-13]

페이지 정보

no_profile 박관우 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2-01-16 23:14 조회3,815회 댓글0건

본문

국보문화재인 석고각은 왜 없어진 것인가!
고종황제 즉위 40주년 기념하여 조성된 석고를 안치한 건축물
 
박관우 국제 칼럼니스트 icon_mail.gif
필자가 국보문화재 석고각의 존재를 최초로 알게 된 것은 2009년 11월 대한제국의 발상지라 할 수 있는 원구단을 추적하는 과정에서 비롯되었다. 석고각은 고종황제 즉위 40주년을 기념하여 조성된 석고를 안치한 건축물로서 1903년 원구단 동쪽영역에 건립되었다. 그러나 원구단이 1913년 일제에 의하여 철거가 되면서 석고각의 수난의 역사가 시작되는데, 1923년 석고각이 있던 자리에 조선총독부도서관을 건립하게 되면서 그 위상이 현저히 약화되었으며, 1935년 이토오 히로부미를 추모하는 절인 박문사의 종루로 이용되는 수모를 겪었다.
 
당시 석고각의 이축(移築)을 앞두고 보도한 1935년 3월 23일자 매일신보 기사에서 석고각을 조선의
국보급 대표건축물의 하나로 평가한 것을 볼 때 문화재로서의 석고각의 가치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러한 석고각이 해방이후 새로운 국면을 맞이하게 되는데, 1958년 11월 당시 박문사 터를 방문하였던 이승만 대통령이 영빈관 착공을 지시하면서 바로 그 자리에 머물러 있던 석고각의 운명이 중대한 고비를 맞게 되었다.
 
1959년 영빈관 착공이 시작되고, 그 이듬해인 1960년 2월 당시 장충단
공원에서 열렸던 민주당 시국강연회에 늠름한 자태를 뽐내며 존재하고 있던 석고각의 모습을 끝으로 현재까지석고각의 모습이 전혀 발견되지 않고 있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1960년 2월까지만 하더라도 존재하였던 석고각이 왜 갑자기 없어진 것일까? 하는 점이다. 그 웅장하고 장엄한 규모로 볼 때도 결코 작지 않았던 석고각이 과연 무슨 일이 있었기에 그 이후의 석고각을 전혀 볼 수 없는 것인지 매우 궁금하다. 이와 관련하여 석고각이 왜 없어졌는지를 추적하는 과정에서 1962년 2월 발족되었던 영빈관 건축추진위원회와 1960년 2월 현재 전국의 문화재를 관리하는 업무를 관장하였던 문교부 문화보존과 문서에 석고각 기록이 있는지 여부를 관련기관에 민원을 신청하였으나 안타깝게도 없다는 회신을 받았지만, 담당공무원이 최선을 다하여 협조하여 준 점은 고무적으로 평가한다.
 
석고각은 역사적인 측면과 문화재적인 측면에서 중요한 가치를 지닌 건축물이라 볼 수 있는데, 구체적으로 고종황제의 권위를 상징하는 석고를 안치하였다는 점과 더불어 국보급으로 결코 손색이 없는 문화재라는 관점에서 볼 때도 귀중한 건축물이었다는 점을 주목해야할 것이다. 필자가 석고각이 하나의 동기부여가 되어 문화재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데, 어찌하여 국보급에 해당하는 고귀한 문화재가 이리도 허망하게 없어졌는데 50년이 지나도록 그 실체가 파악이 안되고 있는 현실에 착잡한 마음 금할 수  없다.
 
흔히 "역사는 반복된다"고 한다. 그런데 역사에서 뼈저린 교훈을 깨닫지 못한다면 그 역사는 다시 반복될 수밖에 없다는 것을 과거의 역사는 냉철하게 말해주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앞으로 이런 불행한 역사가 다시는 반복되지 않고 우리사회에 문화재의 소중한 가치를 계몽하는 차원에서 국보문화재 석고각이 과연 어떤 경위로 없어지게 된 것인지 그 실체를 밝히는데 혼신의 힘을 기울일 것이다.
pgu77@hanmail.net
 
*필자/박관우. 국제 칼럼니스트.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