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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세 휘 박응순(朴應順) 1526(중종 21)~1580(선조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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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_profile 박춘서 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11-04-11 12:52 조회7,953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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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세 휘 박응순(朴應順) 1526(중종 21)~1580(선조 13).

조선 중기의 문신. 본관은 반남. 자는 건중(健仲).

선조비 의인왕후(懿仁王后)박씨의 아버지, 사간(司諫) 소(紹)의 아들이며, 고려말 명문의 후예이다.

아우 응남(應男)과 같이 성제원(成悌元)의 문하에서 배웠다.

1555년 진사시에 합격하여 다음해 의금부도사에 천거되었고,

1559년에 사복시주부가 되었으나 위법사건에 관련되어 면직되었다.

그뒤 사헌부감찰을 거쳐 安陰縣監)이 되어 선정을 베풀었는데 양모상(養母喪) 을 당하여 사임하였다.

1565년 다시 기용되어 돈녕부주부․내섬시주부(內贍寺注簿)를 거쳐 용인현령이 되었다. 이어 돈녕부도정(敦寧府都正)을지내고, 딸이 중전이 되자

1569년 潘城府院君․領敦寧府事가 되었으며, 그뒤 오위도총부도총관(五衛都摠府都摠管)을 겸직하였다. 평소 검소한 생활이 가난한 선비와 같았으며 정치에 일체 간여하지 않아, 당시 사람들이 국구(國舅)가 살아 있는지를 모를 정도로 청렴결백하였다고 한다. 영의정에 추증되었고, 시호는 정의(靖懿)이다.

《박응순(朴應順) / 明宗 10 式年 進士 》

【시험년도】 명종(明宗) 10 (1555) 식년(式年) 진사進士)

【합격등위】 3등 0053

【본인 자】 건중(健仲)

【본인생년】 병술(丙戌) 1526

【본인거주】 경(京)

【본인구존】 자시하(慈侍下)

【본인전력】 유학(幼學)

【부친성명】 박소(朴紹)

【부친품계】 조산대부(朝散大夫)

【부친관직】 세자시강원(世子侍講院)/수보덕(守輔德)

【부친관직】 /지제교(知製敎)

【안항(형)】 박응천(朴應川)

【안항(제)】 박응남(朴應男), 박응복(朴應福), 박응인朴應寅)

선조 7 1/05 박응순(朴應順)을 도총관으로

32 7/27 박동언(朴東彦)을 상의원 정으로,潘城府院君 박응순(朴應順)의아들이며 중전(中殿)의 동모제(同母弟) 이다]

선수13 11/1 영돈녕부사 반성 부원군(潘城府院君) 박응순(朴應順)이 졸하였다.

박응순은 왕비(王妃)의 아버지로서 조금도 정사에 간여하는 습관이 없었고 마음을편히 갖고 고요히 함으로 자신을 지켰 으며 집안 생활이 사치스럽지 않아서 남들이그가 국구(國舅)인지를 알지 못했다.

숙종22 7/27 증 영의정(贈領議政) 박소(朴紹)에게 문강(文康)이라는 시호(諡號)를,

반성 부원군(潘城府院君) 박응순(朴應順)에게 정의(靖懿)라는 시호를,

배 완산부부인 이씨부 문천정 수갑 조 도안군 철 府夫人

정1품에 해당된다. 외명부란 종친(宗親)의 여자 및 문무관(文武官)의 아내로서 남편의 직품(職品)에 따라 봉작을 받은 사람을 말하는데 공주(公主:임금의 嫡女)·옹주(翁主:임금의 庶女)·부부인 ·봉보부인(奉保夫人:종1품)·군주(郡主:왕세자의 嫡女 정2품)·군부인(郡夫人:종1품) 등이 있으며 2품 이상인 사람은 모두 읍호(邑號)를 사용하였다.

4월10일반성부원군시제 많은종인들깨서 참석하시
초헌관 부원군종손 용우
아헌관 도정공파 홍양
종헌관 남곽공파 춘서
집례 숙천공파 원우
대축 부원공파 동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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