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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世譜는 이번에 '潘南朴氏 始祖'라 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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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희서이름으로 검색 작성일11-03-01 16:17 조회5,889회 댓글0건

본문

  왜 우리世譜는 이번에 '潘南朴氏 始祖'라 했나?



宗人 여러분의 健勝을 祈願합니다.


우리 世譜는 지금 6월 말 출간을 목표로 소종중의 교정 작업을 거치는 과정에 있습니다.  교정본 세보 인쇄가 소 종중 별로 진행되고 있어서 금명간 모든 종중들이 교정본 세보를 받아보시게 되실 것입니다.  교정본을 받으시는 대로 꼼꼼히 살피셔서 오탈자 없는 완벽한 세보가 될 수 있도록 협조해 주시기를 바랍니다.  여러 가지 사정으로 인하여 이번 세보가 당초 예정보다 늦어지는 점에 대하여 세보 발간 말단의 한 책임자로서 퍽이나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이번 世譜에 1世祖를 "潘南朴氏 始祖" 라 表記키로 한 理由는 이렇습니다.
이미 알려 드린바와 같이 이번 世譜에서 우리는 1世祖이신 戶長公(諱 應珠)을 "潘南朴氏 始祖" 라 表記키로 결정한바 있습니다.  이를 결정하기까지는 최종 수단으로 투표를 택했습니다마는 투표하기까지에는 여러 표기방법들을 두고 충분한 토론을 거쳐 설명을 들은 다음에 시행하였습니다.  그러나 이와 견해를 달리하시는 분들이 1世祖 表記 방법이 投票의 대상이냐는 질문과 그 중요한 문제를 깊은 생각 없이 거수로 결정하느냐는 오해를 풀어드리고자 이 글을 씁니다.

1. 잘못된 說話를 바로잡기 위해 戶長公 世蹟편의 一部를 削除하였습니다.
호장공(휘 응주)의 세적편에는 凡朴의 始祖이신 혁거세왕의 어머님 仙桃聖母께서 "본래 中國 帝室의 따님이신데 일찍이 神仙術을 배워서 海東으로 遊覽을 왔다가 돌아가지 못하고 神仙이 되었는데 賢人을 孕胎해서 나라를 세웠다는 說과 옛날에 皇帝의 딸이 남편도 없이 잉태를 해서 사람들의 의심을 받게 되자 바다를 건너 辰韓에 가서 아이를 낳아 海東의 始王이 되었다."는 說이 기록되어 있는데 이번에 이 부분을 삭제한 것입니다.
이는 당시 중국을 大國으로 섬겼던 모화(慕華)사상을 바탕으로, 始祖를 예찬(禮讚)하기 위한 神話적 성격의 픽션(虛構)이라는 점과 아울러 혁거세왕을 “아버지가 누구인지를  모르는 사생아” 처럼 묘사하고 있다는 점에서 삭제하게 되었습니다. 

2. "潘南朴氏 始祖"는  始祖와  先祖의 두 개념을 모두 받아 들였습니다.
우리 세보는 첫 족보(壬午譜)에서 1世祖를 "祖"로 표기하였습니다.  이후 두 번째 부터는 줄곧 "先祖"로 표기해 왔습니다.  그러나 이번 世譜는 이 두 가지 개념을 모두 受容하였습니다. 그 이유는 이렇습니다.
유추(類推)해석이긴 합니다마는 첫 족보를 주관하셨던 僉樞公(諱 濠)께서 1세조 호장공을 始祖로 表記하신 것은 당시 羅州에 本貫을 가진 박씨(호장공) 후손들의 始祖라는 의미였을 것입니다.
(당시 우리는 羅州朴氏이었습니다.)  斷言컨대 凡朴의 始祖이신 혁거세왕을 뛰어넘는 始祖라는 표현은 아니셨을 것입니다. 
두 번째 족보를 주관하셨던 西溪公(諱 世堂)은 1世祖를 "先祖"라 표기했습니다.  西溪公 선조께서는 그 이유로 "舊譜(壬午譜)에 이르기를 戶長公을 始祖라 하였는데 모름지기 始祖란 神靈하게 태어난 사람(感神靈)이거나 中國에서 큰 벼슬(大夫이상)을 지냈던 사람이어야 하는데 호장공은 그런 경우가 아니기에 先祖라 한다."고 밝히셨습니다.  이는 西溪公 先祖의 개인생각이라기보다는 당시 朝鮮朝 社會에 풍미(風靡)했던 事大主義의 영향일 것으로 사료됩니다.  또 당시 凡朴의 始祖는 신라왕 혁거세이기에 始祖가 두 분이어서는 안 된다는 의미도 포함되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西溪公 선조께서도 호장공께서 반남이 본관인 반남박씨의 1세조라는 사실은 부인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범박의 시조이신 혁거세왕의 탄생설화와 시조가 되기 위해서는 “대국에서 일정 이상의 벼슬을 지낸 사람이라야 한다.” 는 사대주의 결과물이 제척(除斥)대상인 오늘에서 1세조를 시조라 함은 너무나 당연하다 할 것입니다.  그러나 이번 세보는 "始祖"라 하신 첨추공 선조님과 "先祖"라 하신 서계공 선조님 두 분 모두 “호장공이 반남박씨 1세조” 라는 사실은 부인하지 않으셨을 것이기에 이번에 "潘南朴氏 始祖"라 表記키로 결정한 것입니다.

3. 모든 박씨들은 지금 派祖를 자기의 "始祖"로 표기하고 있습니다.
"新羅王孫은 萬派가 一源"이라는 말이 한 때 유행했었습니다. 모든 박씨들은 혁거세왕의 후예들이라는 점을 강조한 말이 였습니다.  지금 100여 본이 넘는 모든 박씨들이 범박의 시조가 혁거세왕임을 인정하면서도 자기 派祖를 "始祖"라 표기하고 있습니다. 우리만이 "先祖"를 고집할 수 없는 시대적인 변화입니다.

4. 최종 의사 결정 수단은 투표 밖에 없습니다.
세보편찬의 주요사항을 결정하는 운영위원회의 최종 결정은 투표 방법 이외는 없습니다. 이번 운영위원회에서는 충분한 토론을 거쳐서 종이에 직접 써내는 비밀투표 방법을 택했습니다. 절대 다수가 이상과 같은 이유로 "潘南朴氏 始祖" 를 선택하였습니다.  오랜 동안 우리의 선조들께서 고민해 오신 1세조 표기 방법을 두고 우리 세보편찬위원회는 그처럼 신중에 또 신중을 기했다는 점을 말씀드립니다.
끝까지 읽어 주셔서 감사합니다.    


                                             2011.3.1 

                          세보편찬위원회 편집분과위원장 박희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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