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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문동(杜門洞) 이야기(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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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친이름으로 검색 작성일10-07-13 10:51 조회4,791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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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문동(杜門洞) 이야기(1)

다음과 같은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
서기 1392년, 이성계가 조선을 건국하자 고려의 충신 72명이 두문동(杜門洞)에 들어가서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보다 못한 이성계가 불을 놓았지만 끝까지 아무도 나오지 않고 모두 불에 타죽고 말았다. (혹은 딱 한 사람만 나왔는데 그가 바로 훗날 명재상(名宰相)이라 일컬어지는 황희였으며 원래 73인이었던 것이 황희로 인해 72인이 되었다고도 한다). 충절(忠節)의 상징인 이 두문동 72현(賢)으로부터 “두문불출(杜門不出)”(문을 닫아걸고 밖에 나다니지 않음)이라는 고사성어가 생겼다.>

위의 이야기는 사실일까, 아니면 꾸며낸 이야기일까? 오늘날 정통 역사학자들 중에 위의 이야기를 글자 그대로 믿는 이는 많지 않다. 다시 말해서, 이야기 자체가 허구(虛構)이거나 최소한 부분적으로 왜곡ㆍ과장되었다고 본다는 것이다.

“두문동 이야기”가 역사 기록에 최초로 등장한 것은 바로 《영조실록》16년(1740) 9월 1일 기사이다. (고려가 망한지 거의 350년이 지난 후의 일이다).


<
임금이 연(輦)을 타고 가면서 시신(侍臣)들을 돌아보고 이르기를,

“부조현(不朝峴)이 어느 곳에 있으며, 그렇게 명명(命名)한 것은 또한 무슨 뜻인가?”

하니, 주서 이회원(李會元)이 아뢰기를,

“태종(太宗)께서 과거를 설행했는데, 본도(本都)
[송도, 즉 개성을 말함]의 대족(大族) 50여 가(家)가 과거에 응하려고 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 이름이 생긴 것입니다. 그리고 문을 닫고 나오지 않았으므로, 또 그 동리를 두문동(杜門洞)이라고 했습니다[且杜門不出 故又以杜門名其洞].”

하였다.
임금이 부조현 앞에 이르러 교자(轎子)를 정지하도록 명하고, 근신에게 말하기를,

말세에는 군신(君臣)의 의리가 땅을 쓴 듯이 없어졌는데 이제 부조현이라고 명명했다는 뜻을 듣고 나니, 비록 수백 년 뒤이지만 오히려 사람으로 하여금 눈으로 보는 것처럼 마음이 오싹함을 느끼게 한다.

하고, 이어 승지에게 명하여 칠언시(七言詩) 한 구를 쓰게 하니, 이르기를, ‘
고려의 충신들처럼 대대로 계승되기를 힘쓰라. [勝國忠臣勉繼世]’ 하였다. 수가(隨駕)하는 옥당과 승지ㆍ사관으로 하여금 시(詩)를 이어서 지어 올리게 하였으며, 또 직접 부조현이라는 세 글자를 써서 그 터에다 비석을 세우게 하였다.>(푸른 색 부분은 <국사편찬위원회>에서 옮겨온 것임).


숙종의 후궁 숙빈 최씨(TV 드라마에 나오는 “동이”)의 소생이었던 영조는 왕위에 오르기까지 조정의 당파 싸움(권력 투쟁)으로 인해 생명의 위협까지 느끼며 온갖 우여곡절을 겪었다. 이런 상황에서 임금이 된 영조는 고려에 충절을 다한 인물들이나, 단종에게 충성을 다한 인물들 같이 오로지 일편단심 왕을 따르는 충신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리하여
영조는 사실 여부에 대한 세심한 확인을 생략한 채 오직 ‘충(忠)’만을 강조하여 즉석에서 두문동 관련자들에게 제사를 지내주고 비석을 세워 기념하도록 명(命)했으며 그들과 관련된다고 알려진 후손들을 적극 등용하려 했던 것이다.

우리는 여기서 “두문동 이야기”에 나오는 내용 중에 한 가지는 사실이 아니라는 것을 금방 확인할 수 있다. 즉
“두문불출”이라는 말이 “두문동”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반대라는 것이다. 사실은, “두문동”이라는 동리 이름이 “두문불출”이라는 표현에서 나온 것이다. “두문불출”이라는 말은 이때 생긴 것이 아니라 “두문동”이 생기기 훨씬 전 옛날부터 이미 썼던 표현이다.

실제로
두문불출(杜門不出)”이라는 표현은 이미 기원전(紀元前: BC) 90년에 완성된 사마천의 《사기(史記)》 ‘상군열전’에도 나오고, 644년 당 태종 때 편찬된 역사책 《진서(晉書)》에도 나온다. 더구나 ‘문을 닫다’는 뜻인 “두문(杜門)”은 《주서(周書)》, 《위서(魏書)》, 《한서(漢書)》 등 여러 곳에 나타나고 있다. 따라서 “두문” 또는 “두문불출”이라는 말이 “두문동”에 그 근거를 두고 있다는 것은 터무니없는 낭설일 뿐이다. 그런데 심지어 한국학의 총본산이라 할 수 있는 한국학중앙연구원(구 정신문화연구원)에서 펴낸 『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서조차 이런 낭설을 사실인양 기록하고 있으니 그저 허탈할 뿐이다.

그렇다면 “72현”은 어떤가? 72현은 누구누구이며 과연 그 명단은 올바른 것인가? 이 문제에 대한 고찰은 다음에 하기로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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