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의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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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뿐만 아닙니다.
부솔공은 자녀가 一子 一女가 二子로
남곽공의 후손 태장의 자녀는 三子가 四子가 되었다.
길주공의 손자 세추의 자녀는 一女 였는데 어느날 갑자기 一子으로
이들의 공통점은 을유보 갑자보 이후인 무술보, 경신보에 갑자기 등장했고
이들의 후손들이 본손의 자손보다 더 열심히 종중일에 관여한다는 점이다.
> 본래 세보에 대해 매우 무관심했었는데
> 최근에 와서 우연히 세보를 볼 기회가
> 있어서 잠시 살펴보았더니
> 납득하기 어려운 기록들이 눈에 띄었다.
>
> 문득 흥미가 생겨
> 이것 저것 살피다 보니
> 나도 모르는 사이에 세보의 기록을 세밀하게
> 살피는 버릇이 생겼다.
>
>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은 경우가 납득하기 어려운 경우 중의 하나이다.
>
> 오창공(휘 동량)의 셋째 아드님이 되는 관해공(휘 濰)은 1606년에 태어나서 겨우 20세가 되던 1626년에 세상을 떠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 그런데 1642년에 간행된 임오보와 1683년에 간행된 계해보를 비롯하여 1924년에 간행된 갑자보에 이르기까지 자녀가 없는 것으로 되어 있었는데
> 1958년에 간행된 무술보부터 세선(世善)이라는 아들이 있는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
> 1642년에 간행된 임오보 편찬에는 오창공의 장남이신 금양위(휘 미)께서 깊이 관여하신 것으로 보이는데(서문을 지으심) 동생인 관해공에게 자녀가 있는지 없는지를 몰랐을 리가 없고,
> 또 1683년에 간행된 계해보 편찬에는 오창공의 손자이신 현석공(휘 세채)께서 깊이 관여하셨는데 숙부가 되는 관해공에게 자녀가 있는지 없는지 몰랐을 리가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임오보에도 계해보에도 관해공에게는 자녀가 아무도 없는 것으로 되어 있고 특히 계해보에는 "无后"라고 분명히 표시를 해 두었다.
> 이후 병술보, 을유보, 갑자보 모두 "无后"로 되어 있는데
> 어떻게 갑자기 무술보에 와서 아들(世善)이 나타날 수 있는지 납득하기 어렵다.
> 게다가 이러한 상황에 대한 아무런 설명도 없다.
>
> 과연 어떤 일이 있었던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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