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방문자수
  • 오늘194
  • 어제1,165
  • 최대1,363
  • 전체 308,393

자유게시판

세적편 번역 문제 소고(小考)에 대한 생각

페이지 정보

no_profile 박창서쪽지보내기 자기소개 아이디로 검색 전체게시물 작성일09-06-18 16:57 조회4,653회 댓글0건

본문


 세적편 번역 문제 소고(小考)에 대한 생각 


blank.gif  re.gif  세적편 번역 문제 소고(小考)

승혁

 

첫째: “서계방조 서문에 민예란 (隸} 해석도 없고” 라는 지적에 대해:
해당 부분은 다음과 같습니다. (1)은 경신보의 번역문이고(저에게는 경신보가 없기 때문에 퍼온 것을 인용합니다), (2)는 <고전번역원>의 번역문이고, (3)은 김언중 교수팀의 새 번역문입니다.

 

원문: 朴氏。本出新羅。而枝散葉布。分處州郡。下而爲氓隷。上而爲公卿大夫。不可盡數。各以其世之可紀而爲祖。祖之所興而著籍。其著以潘南而以戶長應珠爲祖者。吾族也。
 

(1) 박씨(朴氏)는 본래 신라(新羅)에서 나왔는데 지엽(枝葉)이 산포(散布)되어 주군(州郡)에 나뉘어 살아서 아래로는 민예(亡+民隸)가 되기도 하고 위로는 공경대부(公卿大夫)가 되었으니, 이를 모두 헤아릴 수가 없었다. 각각 그 세계(世系)를 기록(記錄)할 수 있는 것으로써 조선(祖先)을 삼고, 조선(祖先)이 일어난 곳으로써 판적(版籍)에 드러냈으니 그 반남(潘南)으로써 드러내고 호장 응주(戶長 應珠)로써 조선(祖先)을 삼은 이가 우리 일족(一族)이다. (경신보)

 

(2) 박씨는 뿌리가 신라(新羅)에서 시작되어 자손들이 널리 퍼졌다. 여러 고을에 흩어져 살면서 낮게는 평민이나 종이 되기도 하고 높게는 공경(公卿)이나 대부(大夫)가 되기도 하였으니, 그 수를 이루 다 헤아릴 수 없다. 그리하여 각각 기록할 만한 세손(世孫)을 시조(始祖)로 삼고 시조가 일어난 곳을 관적(貫籍)으로 나타냈으니, 반남으로 관적을 나타내고 호장(戶長) 응주(應珠)를 시조로 삼은 가문(家門)이 우리 종족이다. (고전번역원)

 

(3) 박씨는 본래 신라에서 나왔는데 후손들이 흩어져 주군(州郡)에 나뉘어 살다가 아래로 백성이 되기도 하고 위로 공경대부(公卿大夫)가 되기도 하니 이들을 모두 헤아릴 수 없었다. 각각 그 세계(世系)에서 실마리가 될 만한 분으로써 선조를 삼고 선조가 일어난 곳으로써 호적 위에 기록하였으니 반남(潘南)으로써 기록하고 호장(戶長) 응주(應珠)로써 선조를 삼은 이들이 우리 일족이다. (김언중)

 

수정: 박씨는 본래 신라에서 나왔는데 후손들이 퍼져서 여러 주군(州郡)에 흩어져 살면서 아래로는 평민이나 종이 되기도 하고 위로는 공경(公卿)이나 대부(大夫)가 되기도 하니 이들을 모두 헤아릴 수 없었다. (그리하여) 각각 그 세계(世系)에서 실마리가 될 만한 분으로써 선조를 삼고, 선조가 일어난 곳으로써 관적(貫籍)을 나타냈으니, 반남(潘南)으로써 관적(貫籍)을 나타내고, 호장(戶長) 응주(應珠)로써 선조를 삼은 이들이 우리 일족이다.(박승혁)

************************************


아래 해석에 저의 소견(所見)을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첫째: “서계방조 서문에 민예란 (隸} 해석도 없고” 라는 지적에 대해:
해당 부분은 다음과 같습니다. (1)은 경신보의 번역문이고(저에게는 경신보가 없기 때문에 퍼온 것을 인용합니다), (2)는 <고전번역원>의 번역문이고, (3)은 김언중 교수팀의 새 번역문입니다.""

  

원문: 朴氏。本出新羅。而枝散葉布。分處州郡。下而爲氓隷。上而爲公卿大夫。不可盡數。各以其世之可紀而爲祖。祖之所興而著籍。其著以潘南而以戶長應珠爲祖者。吾族也。
원문: 박씨。본출신라。이지산엽포。분처주군。하이위맹례。상이위공경대부。부가진수。각이기세지가기이위조。조지소흥이저적。기저이반남이이호장응주위조자。오족야。

 *위 글은 경신보 9면 6행-7행의 계해보서(癸亥譜序)에 1683.5월 박세당(朴世堂)은 삼가 씀.이라고 된것입니다

 

이 문제에 대한 연구에 열성적인 노력을 아끼시지 않는 승혁 아저씨의 논리적이고 객관적인 자료를 제시하시면서 올리신 글에 대하여는 저도 모두를 공감 합니다.
단지 제 생각에는 아쉬운 점이 조금 있어서 제 소견을 올리고자 하오니 양해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전문은 위 글을 임의로 발췌[拔萃]하여 정리하고 의견을 달리하는 부분을 아래에 제시하였습니다. 


박씨(朴氏)는 본래 신라(新羅)에서 나왔는데 후손들이 여러 고을에 흩어져 살면서 아래로 백성이 되기도 하고 위로 공경대부(公卿大夫)가 되기도 하니 이들을 모두 헤아릴 수 없었다.
그리하여 각각 기록할 만한 세손(世孫)을 시조(始祖)로 삼고 시조가 일어난 곳을 관적(貫籍)으로 나타냈으니 반남으로 관적을 나타내고 호장(戶長) 응주(應珠)를 시조로 삼은 가문(家門)이 우리 종족이다.
(박창서) 
 

1.주군[州郡][명사] 1. 주와 군을 아울러 이르는 말. 2. ‘지방(地方)’을 달리 이르는 말."라고 하는 것보다는  고을이라는 쉬운 우리말을 사용하는 것이 더 현대적이고 친근감이 가며 부드럽다는 생각을 합니다.

 

2. 민예(氓隷)의 예를"(隸[종예,종례,미칠이,미칠대]"라고 하는바 백성으로 해석 하는것이 정상적이란 생각이다. 즉 백성에 미치다(즉 백성이다)라면 족하지 선조 들이 종이 되기도 하였다고 폄하[貶下] 하자는 의미는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3. "公卿大夫[공경대부]삼공과 구경과 대부, 곧 벼슬이 높은 사람들" 이라고 한바 높은 벼슬들을 총칭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는 생각이 든다.

 

4. 위조(爲祖)를 "爲[하위,할위]㉠하다 ㉡위하다 ㉢다스리다 ㉣되다 ㉤생각하다 ㉥삼다 ㉦배우다 ㉧가장하다 ㉨속하다 ㉩있다 ㉪행위" 라고 한바 시조다 선조다 라고 단정적으로 해석하기가 어려우나 고전번역원 해석은 시조로 함에 이를 따름이 타당하다는 생각이다.

각기 성씨들은 본관시조가 있으므로 우리도 반남박씨 본관 시조가 호장공 임을 분명히 하는 것이 좋겠다는 생각이기도하다.

 

                             2009.6.18
       
http://cafe.daum.net/bannampark
              pcs13191@hanmail.net
               카페지기 박창서 올림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맨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