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인물 | 9세 금성부원군錦城府院君 용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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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종중 작성일16-03-30 19:28 조회1,327회 댓글0건본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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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세 금성부원군錦城府院君 용墉] 1468(세조 14)∼1524(중종 19) 초명은 호(壕). 자는 중보(仲保). 할아버지는 지중추원사 강(薑)이고 아버지는 집의(執義) 치(䎩)이며, 인종의 장인이다. 1495년(연산군 1) 사마시에 합격, 전설사별제(典設司別提)을 거쳐 의금부도사·공조좌랑을 역임하고 홍주판관(洪州判官)으로 나아갔다가 과만(瓜滿)(임기만료)이 되자 군기시판관(軍器侍判官)이 되어 다시 중앙으로 들어왔다. 그 뒤 내직으로는 충익부도사(忠翊府都事)· 한성부윤(漢城府尹)을 거쳐 주부(主簿)· 사축(司畜)을 역임하였고, 외직으로는 울진현령· 은율현감을 지냈다. 1524년 딸이 세자빈(世子嬪)(뒤에 仁宗의 妃)에 책봉되자 종친부전첨(宗親府典籤)이 되고, 곧 돈녕부부정(敦寧府副正)을 거쳐 첨지중추부사(僉知中樞府事)로 특진되었다. 죽은 뒤 우의정 겸 춘추관사(右議政兼春秋館事)로 추증되고, 1545년 인종이 즉위하자 영의정· 금성부원군(錦城府院君)에 가증(加贈)(추증이 더하여짐)되었다. 평소 글씨를 잘 썼으며 특히 송설체(松雪體)에 능하였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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