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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인물

역대인물 | 23세 정간공(貞簡公) 원양元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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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종중 작성일16-03-31 16:04 조회1,397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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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세 정간공(貞簡公) 원양元陽]

 

1804(순조 4)∼1884(고종 11)

자는 경유(景猷)이고 제당(齊堂)의 아들이며 영교(泳敎)와 금릉위(錦陵尉) 영효(泳孝)의 아버지이다. 1870년(고종 7) 흥덕현감 · 도사 등을 역임하고 1872년 공조참의에 제수되었고, 1873년 참판의 음직을 받았다. 1874년 도총부 부총관에 특별히 발탁되었으나 이해 법성전전첨사(法聖前前僉使)로서의 비행으로 암행어사가 치죄할 것을 요구하는 계를 올렸다.

 

1883년 공조판서(工曹判書)가 되었다. 1884년 갑신정변 이후 영효의 죄에 연루되어 대호군(大護軍)의 직위를 삭탈 당하였다. 죽은 뒤인 1895년 일본에서 돌아온 영효가 상소하여 관직이 복구되었다.

시호는 정간(貞簡)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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