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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인물

역대인물 | 19세 대사간공大司諫公 서원瑞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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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종중 작성일16-03-31 15:31 조회1,25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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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 대사간공大司諫公 서원瑞源]

 

1750(영조26)~1813(순조13)

자는 심보(深甫)이다. 부친은 사도(師度)이고, 생부는 사명(師明)이다.

 

1786년(정조10) 식년시에서 을과 2위로 문과 급제했다.1788년(정조12) 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으로 언로를 바로잡아야 한다며 만언소(萬言疏)를 올린 오익환(吳翼煥)을 탄핵할 때, 말을 함부로 한 죄로 파직되었다가 경기도 평택현(平澤縣)으로 유배되었다. 1789년(정조13) 사헌부 지평(司憲府持平)이 되었고, 1791년(정조15) 사헌부 장령(掌令)이 되었으며, 1792년(정조16) 사간원 헌납(司諫院獻納)이 되었다.

 

1796년(정조20) 사간원 사간(司諫)으로서 좌의정 채제공(蔡濟恭)과 전 영돈령부사()領敦寧府事 김이소(金履素)의 벼슬을 빼앗고 사대문 밖으로 내칠 것을 주장하였다. 1800년(정조24)에는 사헌부 집의(執義)가 되었고, 순조 즉위 후에 사간원사간이 되어 1801년(순조1) 김종수(金鍾秀)를 종묘에 배향할 것을 청하였으며, 노론 시파 윤행임(尹行恁)과 정민시(鄭民始)를 탄핵하였다. 또 같은 해 10월에 사헌부집의가 되었다.

 

1803년(순조 3) 1월 인사 담당관 전관(銓官)의 도목정사(都目政事)가 잘못되었다고 탄핵한 것에 대해, 영돈령부사(領敦寧府事) 서용보(徐龍輔)가‘잘못된 인사에 대해 상소하는 것은 타당하나 상소한 말에 어폐가 있다’고 파직할 것을 청하자 파직되었고, 같은 해 5월에 평안도 영변부(寧邊府)로 정배되었다가 7월에 방면되었다. 1807년(순조 7)에 사간원 대사간(大司諫)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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