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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인물

역대인물 | 17세 참찬공參贊公 필몽弼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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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종중 작성일16-03-31 15:11 조회1,236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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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 참찬공參贊公 필몽弼夢]

 

1668(현종9)∼1728(영조4)

자는 양경(良卿). 할아버지는 세환(世桓)이고, 아버지는 태진(泰進)이며, 어머니는 김덕승(金德承)의 딸이다.

 

1710년(숙종 36) 증광 문과에 병과로 급제해 예문관검열이 되고, 이후 세자시강원사서(世子侍講院司書)· 사간원정언(司諫院正言)을 거쳤다. 1716년 이른바 병신처분(丙申處分)으로 소론이 노론에 의해 밀려날 때 사헌부지평(司憲府持平)에서 경성판관(鏡城判官)으로 좌천되었다. 그 뒤 소론 중의 준소 계열(峻少系列)의 주요 인물로 활약하였다.

 

1721년(경종 1)김일경(金一鏡)· 이명의(李明誼)· 이진유(李眞儒) 등과 함께 상소해, 왕세제(王世弟 : 뒤의 영조)의 대리청정을 주장한 노론 4대신의 죄를 성토해 신임옥사를 일으켰다. 그 뒤 소론 정권이 수립되자 지평· 사간원헌납(司諫院獻納)·광주부윤· 부제학· 승지· 대사성· 이조참의를 거쳐 참찬이 되었다.

1723년에는 강화유수가 되었는데, 이듬해 관병(觀兵 : 군사의 위세를 검열함)의 제도를 부활하자고 건의해 허락을 얻었다. 1724년 영조가 즉위한 뒤 도승지가 되었으나 실록청(實錄廳)에 사사로이 출입한다는 사헌부의 탄핵을 받았으며, 이어 노론의 공격을 받고 갑산(甲山)에 유배되었다.

 

1728년(영조 4)소론 급진파인 이인좌(李麟佐)가 청주에서 난을 일으키자 유배지에서 나와 반란에 가담한 태인현감 박필현(朴弼顯)의 군중으로 가 서울로 진군하려 하였다.

그러나 도중에 반란이 진압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죽도(竹島)에 숨었으며, 검모포(黔毛浦)로 가 잔당들과 다시 거사하려다가 무장현감 김몽좌(金夢佐)에게 붙잡혔다. 서울로 압송되어 능지처참되었고, 가문은 몰락하였다.

1908년에 신원 복관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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