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게시판
ㆍ작성자 소성
ㆍ작성일 2020-11-22 (일) 22: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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ㆍIP: 220.xxx.199
반남박씨와 부통령 李始榮 家

박씨마을




5년전 우연한 기회에 강화도에 다녀온 일이 있다.

지도를 보다가 ‘박씨마을’이 보여 강화도 출신으로 알려진 贊文(32년생, 예비역 육군대령)님에게 전화를 걸어 ‘현재 강화도에 왔다’는 말과 ‘박씨마을’을 아느냐고 물었더니 ‘그 곳에 친형(贊圭)이 살고 계시니 시간 있으면 찾아보고 오라’고 하신다.



※박찬규 - 자유게시판 5910번 “광복군 박찬규 지사"(작성자 한가람)



박씨마을 : 강화도 송해면 

반남박씨 세양공후 집성촌 (14세 황(晃)선조 후손)

강화도 최북단 마을, 철책선 너머로 한탄강이 흐르고 강 건너 황해도 들판과 마을이 보이며 강의 폭은

1800m 정도이다.


마을이 민통선 안에 있어 마을입구 초소를 지나려니 어쩐지 위축되고

(강화도에 민통선이 있다는 사실을 전혀 생각하지 못했고 신기했다).



마을 회관에서 이장을 겸하고 있는 종중대표 재우님과 회관에 나오신 찬규 내외분을 뵙고 인사드렸다.

인천은 항렬이 높다는 선입견으로 재우님 항렬을 齊 字로 생각하고 호칭을 대부님!으로 했더니 “저 雨 字예요‘라고 말씀하신다. (朴在雨 39년생)

귀향한 후 찬문씨와 대화를 나누는 과정에서 집안 고모가 초대부통령 이시형의 부인이란 말을 듣고 조사해 보았다.



독립운동가 찬규


한일합방 후 많은 애국지사들이 중국으로 망명하였다.
개별망명, 식솔과 함께하는 가족망명, 집안전체가 떠나는 집안망명 등



1932년 돈암동에서 태어난 贊文은 5세때 부모님과 함께 중국에 들어가 국민학교 1학년 때 어머니를 여인 후 부친은 먼저 귀국한다.

백모님 보호를 받으면서 사촌들과 큰 어려움 없이 지낸 것으로 보아 정치적인 망명이 아닌 사업 때문에 부친형제들이 중국에 들어가신 것으로 느낀다.
정부수립 후 상해에서 가깝게 지내던 집안고모가 부통령 이시영과 결혼하고 해방직전 중국에서 돌아가셨다는 말을 들었지만 그 과정은 알 길이 없다.

귀국후 3학년부터 덕수국민학교에 다니다가, 5학년 때 대전국민학교, 대전중학 1학년 때 해방, 6학년 때 6․25→학도병 1기, 몇 번의 사선을 넘다가 대령으로 예편한 후 처가동네 광주에 정착한다.



중국에 홀로 떨어진 작은형 찬규는 독립군과 연계된 사건으로 상해에서 체포된 후 서울 형무소에서 복역중 해방되어 죄수복을 입은 거지상태로 유성 들판에서 가족과 상봉한다.
일본군 신분으로 체포되었고 사상범이기 때문에 가족에게 알리지 않고 재판하고 복역하는 과정에서 가족은 전혀 알지 못했고, 부모님 주소를 몰라 무척 해맬 수밖에 없었다.


전쟁중 소실된 재판기록, 수형기록은 찾을 수 없어 애를 태우다가 찬문이 대전중학 일본인 동창들을 동원하여 해방후 30여년이 지난 후 일본에서 찾아내 2000년 건국훈장 애족장을 받았다.



李會榮 

이회영은 한말에 활동한 독립운동가다.

여섯 형제와 일가족 전체가 전재산을 팔아 만주로 망명하여 항일 독립운동을 펼쳤으며 '서전서숙' '신민회' '헤이그밀사' '신흥무관학교' '고종의 국외망명' '의열단' 등 국외 항일운동의 전반에 관여하였다. 임시정부 수립을 반대하였으며 신채호, 이을규 등과 아나키즘(Anarchism, 무정부주의) 운동을 전개하였다.


이회영의 형제는 모두 여섯이었다.

'삼한갑족(三韓甲族)'의 자제였던 이들 6형제는 일제 때 나라가 망하자 '대대로 명문이라는 소리를 듣는 우리 가문이 일제 치하에서 노예가 되어 생명을 이어간다면 무슨 면목이 있겠는가!'라 통탄했다. 이들은 백사 이항복의 10세 후손으로서 고종 때 이조판서를 지냈던 이유승(李裕承)의 여섯 아들이었다.



이들 형제는 60명의 대가족 모두를 12대의 마차에 나누어 태우고, 1910년 겨울에 서울 명동을 떠나 눈 내리는 만주로 망명하였다. 첫째는 이건영(李健榮·1853~1940), 둘째 이석영(李石榮·1855~1934), 셋째 이철영(李哲榮· 1863~1925), 넷째 이회영(李會榮· 1867~1932), 다섯째 이시영(李始榮·1869~1953), 여섯째 이호영(李頀榮·1875~1933)이었다. 


이 망명을 주도했던 인물은 넷째였던 이회영이었다.

당시 서울 중심부(현 명동 일대) 만석군의 갑부 집안

집안전체가 떠나는 집안망명


6형제는 엄청난 생활고를 겪었고, 광복 때까지 유일하게 살아있었던 이시영을 제외한 다른 형제들은 모두 광복을 보지 못한 채 고문사, 병사, 객사, 아사(餓死)했다.                                                                                                                              <NAVER 초록>

반남박씨와 부통령 李始榮 家


1) 장남 健榮 配 : 潘南朴氏 : 승지 弘陽 3녀 (전자보 2권 1394면) (西浦公 后)
2) 4남 會榮 사위 :潘南朴氏 : 彰緖(父 勝轍 子 贊元)(전자보 5권 453면) (梧窓公 后)

3) 5남 始榮 配1 : 경주 김씨 (김홍집의 딸)

             配2 : 潘南朴氏 : 勝文의 4자1녀 (전자보 10권 1197~1198면) (世襄公 后)

                   (중국에서 결혼, 사망)

4) 6남 頀榮 配 : 潘南朴氏 : 승지 勝億 女 (전자보 2권 1378면) (西浦公 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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